[천자칼럼] 붉은색 효과

'여자는 남자보다 진홍색 와인색 오렌지색 등 붉은 계열의 색을 더 잘 구별해 낸다. 붉은색을 감지하는 유전자를 남자보다 두 배나 더 갖고 있어서다.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진이 '인간 유전학 저널'에 발표한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인류가 채집생활을 할 당시 붉고 싱싱한 과일을 많이 따오는 여성들이 경쟁력이 있었고,그런 유전적 특성이 후대에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란다.

치열한 승부를 벌여야 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붉은색이 긍정적 효과를 낸다는 조사도 있다. 영국 더햄대 진화인류학자 로버트 버튼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권투 태권도 레슬링 선수의 옷 색깔과 경기 결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봤더니 승리한 선수의 55%가 붉은 색 옷을 입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실력이 막상막하인 경기에서는 붉은 옷을 입은 선수의 승률이 62%나 됐다고 한다. 붉은색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가 꺾인다는 얘기다. 타이거 우즈가 출전한 골프대회 최종 라운드에 예외없이 붉은색 셔츠를 입고 나와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상대를 압도하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심지어 붉은색은 미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도 있다.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연구소가 남녀 500명에게 다양한 색깔의 조명 아래에서 와인을 마시게 한 결과 붉은색 조명 아래에서는 흰색이나 녹색 아래에서보다 1.5배나 더 달다고 느꼈단다.

이번엔 여성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어떤 색의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남성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로체스터대의 앤드루 엘리어트 교수가 미국 · 중국 · 영국 · 독일의 19~22세 여성들에게 한 평범한 외모의 남성이 다양한 색깔의 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붉은색 옷에 가장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남성들에게서도 일부 나타났지만 여성들에게서 훨씬 뚜렷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붉은색 옷을 입으면 자신감을 갖게 되는 효과까지 있다니 여자친구에게 '고백'을 앞둔 청년들은 참고할 만하겠다. 여성들이 갖고 있는 유전적 요인에 붉은색 고유의 힘이 곁들여지면서 그런 효과를 낳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고 마냥 붉은 옷에만 기댈 일은 아니다.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남녀관계에서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이 먼저일 테니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