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비바람 헤치고 돌아온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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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와 왜곡의 민족수난사 담겨3년 반여 동안 가림막 뒤에 자취를 감췄던 광화문이 돌아왔다. 기존 광화문을 해체하고 복원한다는 발표가 났을 때 여론은 또 한번 들끓었었다. 한편에서는 왜 '멀쩡한' 광화문을 건드리느냐며 난리였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지라 일부 진영의 의심이 가중되었다. 그에 맞선 다른 일부 진영의 반론도 불이 붙었다. "이 기회에 군사정권의 잔재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로 들어와서도 복원공사는 계속됐다. 이전 정권의 정책적 유산을 공격한다고 욕을 먹던 문화부 장관도 어쩐 일인지 광화문 복원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불신의 시대 극복하는 상징되길
광화문 복원을 두고 그 건물의 틀어진 각도나 콘크리트로 된 문루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다. 유독 현판 글씨가 문제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사수론'이 식지 않았다. 적어도 이제는 "한글로 써야 한다"는 한글학회 등의 주장도 나왔다. 한자를 쓰려면 조선시대 명필의 글씨를 사용하자는 '유명세 동원론'도 제기됐다. 결국 1865년 경복궁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본래 계획안의 정신에 따라 현판 글씨는 당시 중건책임자 임태영의 글씨로 되살아났다. 오늘 복원된 것은 단순히 광화문이 아니라 경복궁의 일부다. 우리가 다시 찾은 광화문은 1989년에 수립된 경복궁 복원 계획의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현판 논란이 한창 시끄러울 때 눈앞의 불싸움 중계에 바빴던 우리 중 누구도 광화문을 경복궁 복원 계획의 큰 원칙과 맥락 안에서 차분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그것이 1989년에 수립된 장기적 복원 계획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1989년이 언제인가.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 시기 아닌가. 그 시대의 경복궁 복원 계획 수립자들을 방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인가!
우리는 바야흐로 끔찍한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공적 발언과 행동도 당리당략에 따른 의도를 의심한다. 사적 이익 추구와 권력도모를 짐작해대느라 난리다. 장기적인 역사의 대의,나라의 이익,문화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걱정하는 발언은 '웃기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호흡 짧은 인간관이다. 물론 사람들의 의도는 복합적인 경우가 많다. 지난 시절의 우상과 위선이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그렇다고 해도 우리 한켠에 자리잡은 불신과 의심이 공공선의 대승적 흐름 자체를 막는 증상은 가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오늘 나는 감사한다. 서울 한복판을 차지하는 중심성,국가 정체성과 권력 정당성을 담는 상징이 집중된 총합체였기에 경복궁과 그 정문인 광화문은 파괴와 왜곡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제대로 된 형태'로 되살리고자 한 1989년 노태우 정부의 문화재 정책 수립자들에게 나는 감사한다. 비록 또 한번 빗발치는 반대여론이 끓었지만 기존 계획의 정신에 따라 199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김영삼 시대의 정책 추진자들에게 나는 감사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기존 광화문을 해체하고 복원에 들어간 노무현 정부의 정책 추진자들에게 나는 감사한다. 그에 따라 오늘 경복궁의 일부와 광화문을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되돌려준 이명박 정부의 정책 추진자들에게 나는 감사한다. 경복궁 복원공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공사를 이끌어온 신응수 대목장은 광화문 건물이 앞으로 천년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역사의 무상함을 반추해 볼 때,천년 뒤 우리나라의 이름이 무엇일지 나는 자신하지 못한다. 다만 오늘,나는 우리 앞에 다시 돌아온 저 당당하고 아름다운 광화문을 맞아,이 문이 앞으로 천년을 버텨주기를 마음 깊이 기원한다. 그 천년 동안 이 문을 지켜줄 미래의 세대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송도영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