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사내하청 대법원 판결,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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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통용돼온 도급관계 불인정사내하청과 관련된 최근 대법원 판결이 논란과 문제를 낳고 있다. 개요는 이렇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불법파업,무단결근 등으로 해고된 뒤 낸 부당해고 소송에서 대법원은 원청회사와 근로자의 관계가 형식상 도급관계일 뿐 원청회사의 직접 노무지휘를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근로자파견은 2년 이상 지속되면 사용회사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파견법 조항을 적용해 원청회사를 사용자라고 볼 수 없다는 원심을 파기하고 환송했다.
규제투성이 파견법 개정 시급해
그러나 원청회사와 근로자의 관계가 도급관계가 아니라 근로자파견 관계라는 대법원의 판단은 현실은 물론 이제까지 통용된 법리와도 괴리가 있어 논란이 된다. 근로자파견은 파견업체에 고용된 근로자가 계약에 따라 사용업체에 파견돼 사용업체의 지휘 · 명령을 받으며 일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사내하청의 도급근로는 사용업체에 파견돼 일하되 지휘명령은 도급업체의 관리자로부터 받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둘 사이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지휘명령권을 사용업체가 갖느냐 도급업체가 갖느냐다. 대법원은 컨베이어벨트 주위에 원 · 하청근로자가 함께 배치돼 원청업체 소유의 시설,부품을 사용해 원청업체에서 작성한 작업지시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원청업체가 작업량,작업순서,작업속도,시업과 종업시간 및 교대제 운영들을 결정한다는 점,원청업체가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한 근태상황을 파악 관리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원청업체가 지휘명령하는 관계였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원 · 하청 근로자가 혼재돼 일하는 현장이라면 작업 장소와 시간이 서로 같을 수밖에 없는 특성상 위와 같은 모습은 불가피한 것으로서,이에 근거해 원청업체가 지휘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현장에 대한 몰이해 탓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하는 작업이라면 원 · 하청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작업내용을 별도로 가져갈 수가 없음은 상식이다. 그래서 노동부의 관련지침 또한 작업의 특성상 일치시켜야 하는 경우 근로시간 결정권을 사용업체가 가진다 해도 파견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적용된 근로자파견법이라는 법규가 매우 잘못된 법이라는 점이다. 비슷한 성격의 일에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법규가 적용됨으로써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파견과 사내하청 도급은 매우 유사하다. 고용주와 사용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같고 사용업체 근로자들과 같이 일한다는 점도 같다. 단지 업무의 구체적 지휘명령권을 누가 갖는지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적용되는 법규는 하늘과 땅 차이다. 도급에는 아무런 규제가 없는 반면 근로자 파견법은 규제덩어리다. 허용되는 업무도 제한돼 있고,2년 이상 하지 못하며,기한을 넘기면 사용업체에 직접고용 책임이 주어진다. 그러니 업체들은 파견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조차 도급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적법한 도급조차 파견으로 몰아서 사용업체에 고용의무를 지우려 한다. 서로 비슷한 근로형태에 대해서는 비슷한 내용의 법이 적용돼야 한다. 그래야 시비가 생기지 않는다. 근본 해법은 전 세계 유례없이 악성규제로 가득찬 파견법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현행 파견업무 제한은 폐지해야 한다. 2년 사용 후 직접고용 책임도 폐지해야 한다. 그래서 노사가 파견이나 도급 중 가장 적합한 것을 편하게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 도요타에서는 컨베이어벨트라인에서 정규직,사내하청,그리고 파견근로자까지 혼재돼 일하고 있다. 선진 외국에서는 아무 일없이 통용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만 희한한 법제도로 인해 금지된다면 선진화는 물론 일자리 창출까지 물건너 가고 말 것이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