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박선구 러스크기념병원 이사장 "과잉진료할까봐 MRI 들여놓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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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고가 검사 없애 부담 줄여"병원에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기기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각급 병의원들이 고급 진료를 선호하는 의료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죠.이런 폐단을 줄이고자 반드시 필요한 검사만을 외부 전문검진기관에 의뢰하고 있습니다. "
양한방 협진ㆍ재활치료에 강점
고령화 대비 '엘더 케어' 시스템 구축
수도권에 3개의 재활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선구 러스크기념병원 이사장 겸 러스크수지병원장은 지난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돈만 생각했다면 CT나 MRI를 두는 게 당연하고 다른 병의원들도 우리 병원의 운영 방식에 바보스럽다고 비웃지만 장기간 재활치료 또는 요양으로 경제 사정이 나쁜 소비자에게 월 수십만원이라도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스크기념병원은 2006년 11월 성남시 정자동에 러스크분당병원(240병상)을 개원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3월과 7월 각각 서울시 명일동과 용인시 풍덕천동에 러스크강동병원(115병상)과 러스크수지병원(240병상)을 잇따라 개원한 재활요양 전문병원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자매병원으로 노인전문병원인 하워드힐병원(400병상)과 하워드힐요양원(140병상)을 용인시 영덕동에 추가로 열었다. 지난 3월엔 보건복지부의 지정 재활전문병원으로 승인받았다. 올해 안으로 부산에도 분원을 낼 계획이다.
병원 이름이 유래한 고 하워드 러스크 박사는 세계 2차 대전에 부상당한 군인환자를 치료하면서 재활의학을 개척한 의사다. 러스크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박 이사장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활치료사를 고용하고,매주 3회 자체 교육과 매년 '근로자의 날 ' 모범직원 해외워크숍 파견 등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러스크기념병원 및 하워드힐병원에서는 물리치료사 220명,작업치료사 70명,중추신경질환 전문 물리치료사 60명,언어치료사 5명,운동관리사 5명 등 총 6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러스크기념병원은 요양보다는 재활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지난해 재활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복귀하는 환자 비율이 43%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이를 위해 뇌졸중 관절염 등 당면한 만성질환을 치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신 상태의 개선과 영양섭취를 통해 스스로 병을 이기는 자연치유력을 회복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암환자를 위해 암재활 및 영양(CRN)센터를 두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러스크병원은 새로운 치료시스템 도입과 재활장비 개발에도 열중이다. 욕창 전문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며 최신 음압치료기 및 드레싱 기법으로 기존 방법보다 치료기간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 욕창관리전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성인 소아 장애인 등 누구나 참여하는 '파크골프' 프로그램을 매월 1회 실시해 자세교정치료를 하고 있다.
또 수중 보행 재활치료장비인 '아쿠아큐브'는 러스크 의료진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지난 8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의료기기로 허가받았다. 이 장비는 치료사의 도움 없이 환자 홀로 물속에 들어가면 수중러닝머신에 의해 보행치료를 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 외국에서 수입된 제품은 1억8000만~3억2000만원을 호가하지만 아쿠아큐브는 4000만~5000만원으로 훨씬 저렴하다. 이와 함께 한양대 휴먼로봇연구실과 로봇전문기업인 로보스타와 공동으로 걷기 힘든 환자들에게 보행법을 연습시키는 재활로봇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양한방 협진이 가능한 것도 이 병원만의 자랑이다. 양한방 복수면허자인 박 이사장은 "1998년 재활의학과를 개원했는데 관절염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78세의 할머니가 머리를 심하게 흔드는 풍두선(風頭旋)에 걸려 찾아왔는데 약을 처방해줘도 효과가 없자 발길을 끊은 지 나흘 만에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말끔히 나아서 다시 나타났다"며 전문의 면허를 따고 한의대에 편입학한 동기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의사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며 "이를 계기로 그동안 불신해오던 한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한의대 시절에도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오후 5~10시에는 환자를 돌보는 열성을 다했다. 박 이사장의 비전은 고령화시대를 맞아 재활치료는 물론 노인의 주거 · 요양,여가선용,일상용품까지 도맡아 노인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엘더케어(Elder Care)그룹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일지 모르나 환자에게 저렴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산업 선진화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