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의료비 상승률 OECD 2배…'이념' 의 잣대 버리고 합의 이끌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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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현아 한림대 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다리를 다친 소녀가 깁스를 감고 침상에 누워 있다. 담당의사가 두툼한 의무기록과 전자계산기를 들고 회진을 온다. "유감스럽지만 따님의 치료 비용 계산 결과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이에 따라 따님을 안락사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
이 웃지 못할 광경은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개혁안 표결을 두고 한창 열띤 공방이 오갈 무렵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내용이다. 물론 과장된 이야기지만 미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의료 배급제(rationing)'에 대한 우려를 직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의료비 상승의 고민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별로 없겠지만 한국은 그 상승세가 가팔라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2배를 넘는 연 평균 8% 수준이다. 한국은 지난 30여년간 저수가-저비용 구조로 국민 총생산 대비 의료비 지출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월등히 낮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런 안이한 정책들은 더 이상 효용이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비 지출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러 재정이 파탄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족한 의료보험 재정을 어떻게 지출하는 게 합리적인 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인가. 그 사례를 보험약가 책정 방식을 통해 얘기하고자 한다. 악명 높은(?) 영국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격인 NICE(National Institute for Clinical Excellence)는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인정하는 약제의 보험 승인을 거부하는 사례가 빈번해 환자 단체로부터 거센 항의와 소송을 당하는 일이 잦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당신의 병은 국가적으로는 치료해 줄 가치가 없으니 낫고 싶으면 당신이 알아서 약을 사먹으시오."하는 식인데 그 약값이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의약품의 경제성 평가는 재취업으로 인한 임금 수입(생산성 증가),고통의 경감,환자의 자신감 회복,가족관계 개선,사회적 역할 개선 등 다양하고 모호하나 흔히 건강생명유지연한(QALY:Quality Adjusted Life Year)이란 기준을 많이 쓴다. 이는 특정 치료를 한 경우 완벽한 건강 상태로 지내는 기간을 몇 년 더 연장시킬 수 있는지를 따지는 지표다. 참고로 미국 사회가 합의한 1QALY는 약 8만달러로 직설적으로는 어느 약제를 먹어 1년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사회가 8만달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휴머니즘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사람 목숨을 저울질해 약값을 매긴다"고 화를 낼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세계의 의과학자들이 밤을 밝히며 연구해 개발한 신약과 치료기술이 국가 재정을 파탄시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할 것은 의료보험이란 국가가 아닌 사회 구성원,바로 우리들이 지불하는 비용이란 점이다. 의료비 지출에 이념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합리적인 컨센서스를 이끌어내야 하는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