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담뱃값 인상

중남미 대륙에서 야생종으로 자라던 담배를 문명세계에 알린 사람은 콜럼버스다. 1492년 바하마제도와 쿠바를 돌아다니다 원주민들로부터 받은 선물 중에 마른 담뱃잎 뭉치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한동안 유럽과 서인도제도를 오가는 선원들이 애용했으나 16세기 중반 담배에 의약적 효능이 있다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면서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건 임진왜란 무렵이다. 남쪽에서 전래된 신령스런 풀이란 뜻의 '남령초(南靈草)'로 부르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즐겼다고 한다. 애연가로 유명한 정조는 요즘 듣기엔 민망할 정도의 찬사를 남겼다. '화기(火氣)로 한담(寒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연기의 진액이 폐장을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안온하게 잘 수 있었다. ' 정조 문집 '홍재전서'에선 '우리 강토의 백성에게 베풀어 혜택을 함께하고 효과를 확산시켜 천지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 한다'면서 흡연 장려책까지 천명했다. 그렇다고 군왕의 담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저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했냐고 어의(御醫)를 탓할 일도 아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연초는 맵고 열이 있어 장담,한독,풍습을 몰아내며 살충 효과가 있다. 양성으로 쉽게 이행하고 퍼지므로 냉한 음식에 체한 데 쓰면 신효하다'는 대목이 나오니까. 반면 숙종은 전국에 금연령을 내렸다. 담뱃불로 민가와 관청이 화재 피해를 입는 일이 빈발한데다 몇몇 읍이 잿더미가 되자 격노해 취한 조치다.

담배 효용론과 끽연 풍조에 결정타를 날린 건 미국 의사 쿠퍼다. 1954년 담배 연기에서 벤조피렌이란 발암물질을 찾아낸 게 계기다. 이후 수십 종의 발암물질과 수천종의 화학물질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유해론이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이젠 어떻게 하면 금연을 유도하고 사회에서 담배를 추방할까가 관심의 대상이다.

가장 좋은 금연 정책은 담뱃값 인상이란 보고서를 질병관리본부가 내놨다. 현재 2500원에서 8500원으로 올리면 43.1%에 이르는 성인남성 흡연율을 OECD 평균인 28.4%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참에 선진국의 20~50% 정도인 우리 담뱃값을 인상하려는 포석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애연가들은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해법은 있다. 건강 해치며 세금까지 붙는 담배를 딱 끊으면 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