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박진감(迫眞感)' 대 '박진감(迫進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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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 소설은 박진감 넘치는 구성과 탄탄한 주제 의식으로 생동감을 더해 준다. "
"할아버지께서는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 보릿고개라 불리던 시절의 곤궁했던 삶의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설명하셨다. "나) "여러분과 세계 60억 인류는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박진감 넘치는 축구경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 "결승전에서 맞붙은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시종 박진감 있는 경기를 펼쳤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 6월 중순 개막해 한 달여간 지구촌을 달궜던 월드컵 대회는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났다.
대회 기간 내내 우리는 한국 대표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간의 시합일지라도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 스포츠는 물론이고 영화나 소설 따위를 설명하는 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박진감'이다.
주로 '박진감 넘치다/ 박진감이 있다' 식으로 굳어져 쓰인다.
그런데 가)와 나)에 쓰인 '박진감'은 얼핏 보면 구별하기 힘들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박진감'을 '진실에 가까운 느낌'으로 풀고 있다.
한자로는 '迫眞感'이다.
이 말은 '표현 따위가 진실에 가까움'이란 뜻의 '박진(迫眞)'과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느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감(感)'이 어울려 이뤄진 단어다. '-감'은 우월감/책임감/초조감/성취감/만족감 같은 다양한 파생어를 만드는,생산성이 아주 높은 말이다.
따라서 어떤 영화나 소설 따위를 말하면서 '박진감이 있다'라고 하면 이야기 전개가 '진실에 가까운,생생한,사실 같은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
즉 '리얼리티가 충실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가)에 보이는 '박진감'이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에 쓰인 '박진감'에 이런 풀이를 적용하면 의미가 매우 어색해진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풀면 '사실감 넘치는,생생한 느낌이 드는 경기'란 뜻인데,이는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경기는 그 자체로 사실인데 이를 '사실감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때 쓰인 '박진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박진감 넘치는 경기'라고 할 때,사람들은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경기 양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역동적'이란 말에 가깝다.
"신문기사나 뉴스에 보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라는 표현을 자주 보는데요.
사전에서는 박진감의 의미가 '진실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표현은 잘못된 건가요?" (2007.1.12.)
"말씀하신 대로 '박진감'은 진실(혹은 실제)에 가까운 듯 생생한 느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경기에 자신이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질의응답 코너인 '온라인 가나다'에 올라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답변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라 다소 억지스러운 데가 있다.
우리말에는 '박진(迫眞)'과는 뜻이 다른,또 하나의 '박진(迫進)'이 있다. 이는 '바싹 가까이 나아감.
세차게 밀고 나아감'을 뜻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박진(迫眞)'과 '박진(迫進)'을 함께 표제어로 올려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파생어인 박진감(迫眞感)은 있는데,박진감(迫進感)은 올리지 않았다.
이 박진감(迫進感)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세차게 밀고 나아가는 느낌'이란 뜻의 말이다.
앞머리의 예문 중 나)에 쓰인 '박진감'은 이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이 말을 빠뜨렸다. 단어로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란 말에서 '박진감'이 어떤 말인지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의미로나 쓰임새로나 박진감(迫眞感)에 비해 박진감(迫進感)을 훨씬 더 많이,널리 쓰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비해 한글학회에서 지은 <우리말 큰사전>(1992년)에는 오히려 '박진감(迫進感)'은 있어도 '박진감(迫眞感)'이란 말은 없다.
박진감(迫眞感)과 박진감(迫進感)은 서로 다른 말이다. 한글 표기는 같지만 각각 의미와 쓰임새가 다르다. 박진감(迫進感)은 가)와 나)에 두루 쓸 수 있는 반면,박진감(迫眞感)은 가)에선 적합해도 나)에서는 쓸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라진 '박진감(迫進感)'은 하루 빨리 복원돼야 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할아버지께서는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 보릿고개라 불리던 시절의 곤궁했던 삶의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설명하셨다. "나) "여러분과 세계 60억 인류는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박진감 넘치는 축구경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 "결승전에서 맞붙은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시종 박진감 있는 경기를 펼쳤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 6월 중순 개막해 한 달여간 지구촌을 달궜던 월드컵 대회는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났다.
대회 기간 내내 우리는 한국 대표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간의 시합일지라도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 스포츠는 물론이고 영화나 소설 따위를 설명하는 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박진감'이다.
주로 '박진감 넘치다/ 박진감이 있다' 식으로 굳어져 쓰인다.
그런데 가)와 나)에 쓰인 '박진감'은 얼핏 보면 구별하기 힘들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은 '박진감'을 '진실에 가까운 느낌'으로 풀고 있다.
한자로는 '迫眞感'이다.
이 말은 '표현 따위가 진실에 가까움'이란 뜻의 '박진(迫眞)'과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느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감(感)'이 어울려 이뤄진 단어다. '-감'은 우월감/책임감/초조감/성취감/만족감 같은 다양한 파생어를 만드는,생산성이 아주 높은 말이다.
따라서 어떤 영화나 소설 따위를 말하면서 '박진감이 있다'라고 하면 이야기 전개가 '진실에 가까운,생생한,사실 같은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
즉 '리얼리티가 충실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가)에 보이는 '박진감'이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에 쓰인 '박진감'에 이런 풀이를 적용하면 의미가 매우 어색해진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풀면 '사실감 넘치는,생생한 느낌이 드는 경기'란 뜻인데,이는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경기는 그 자체로 사실인데 이를 '사실감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때 쓰인 '박진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박진감 넘치는 경기'라고 할 때,사람들은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경기 양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역동적'이란 말에 가깝다.
"신문기사나 뉴스에 보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라는 표현을 자주 보는데요.
사전에서는 박진감의 의미가 '진실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표현은 잘못된 건가요?" (2007.1.12.)
"말씀하신 대로 '박진감'은 진실(혹은 실제)에 가까운 듯 생생한 느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경기에 자신이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질의응답 코너인 '온라인 가나다'에 올라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답변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라 다소 억지스러운 데가 있다.
우리말에는 '박진(迫眞)'과는 뜻이 다른,또 하나의 '박진(迫進)'이 있다. 이는 '바싹 가까이 나아감.
세차게 밀고 나아감'을 뜻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박진(迫眞)'과 '박진(迫進)'을 함께 표제어로 올려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파생어인 박진감(迫眞感)은 있는데,박진감(迫進感)은 올리지 않았다.
이 박진감(迫進感)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세차게 밀고 나아가는 느낌'이란 뜻의 말이다.
앞머리의 예문 중 나)에 쓰인 '박진감'은 이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이 말을 빠뜨렸다. 단어로 취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란 말에서 '박진감'이 어떤 말인지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의미로나 쓰임새로나 박진감(迫眞感)에 비해 박진감(迫進感)을 훨씬 더 많이,널리 쓰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비해 한글학회에서 지은 <우리말 큰사전>(1992년)에는 오히려 '박진감(迫進感)'은 있어도 '박진감(迫眞感)'이란 말은 없다.
박진감(迫眞感)과 박진감(迫進感)은 서로 다른 말이다. 한글 표기는 같지만 각각 의미와 쓰임새가 다르다. 박진감(迫進感)은 가)와 나)에 두루 쓸 수 있는 반면,박진감(迫眞感)은 가)에선 적합해도 나)에서는 쓸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라진 '박진감(迫進感)'은 하루 빨리 복원돼야 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