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한국 길목에서] '나답게' 사는 사람 많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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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자체가 소중한 등반 인생생과 사를 넘나드는 비정한 히말라야 8000m 등반을 마치고 고국의 산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아기자기한 산,숲이 우거진 골에 새소리,계곡물 소리 들으며 마음이 통하는 벗들과 함께 있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외형보다 내실 키울 때 나라 강해져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가다보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우리의 산하가 너무나 정겹다. 내 눈에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게 보인다. 자연이 보여주는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는 우리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사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디고 이겨나가는 힘을 길러준다고 생각한다. 나의 등반은 서울의 북한산 인수봉에서부터 시작해 세계 7대륙 최고봉,히말라야 8000m 14고봉을 모두 올랐다. 수십년간 우리나라와 외국 산으로만 돌아다니다 보니 현실속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얼마 전 최신형 스마트폰을 선물받았다. 많은 기능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전화받는 방법을 몰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계 멋대로 아무한테나 전화를 걸게 돼서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반대로 그런 전화를 받고 속으로 웃었던 적도 있었다. 대학시절 전산을 전공했지만 나는 사이버 세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급변하는 현실 속,정보기술(IT) 강국인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느새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들과 우열을 다투는 대등한 경쟁상대로 발돋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 · 25전쟁으로 폐허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우리의 수출 규모가 세계 10위 안에 올라섰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쟁 이후 불과 60여년 만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전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벌거벗은 산에 나무를 심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지금 대한민국에 민둥산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 산들은 이제 한 해 1500만명 정도가 매월 정기적으로 등산을 즐길 정도의 여유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한다. 산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1993년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원으로 첫 히말라야 등반을 했다. 당시는 개인이 등반 비용을 마련해 원정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은 지방별,개인별로 자유롭게 등반을 떠난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한다. 6 · 25전쟁 이후 외국의 많은 지원을 받았던 우리가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 이처럼 경제수준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직전이라고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녀온 경험이 많다. 그래서 숨 쉬는 삶 자체가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저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남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가장 자기답게 살다 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가장 자기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하는 일과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사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개성 있고 멋스러운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다운 삶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많은 나라,이웃과 함께 더불어 잘사는 나라.외형적인 모습만이 아닌 내면적인 내실이 꽉찬 가장 우리다운 모습을 지닌 사람이 많은 나라.
그래서 세계인이 닮고 싶고 와 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을 때,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은선 산악인
한국경제·우리은행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