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회화'로 인생 이모작…색채의 마술에 빠져 살죠

'아시아 우수작가 워크 축제'서 대상받은 송숙영씨
소설가이자 서양화가인 송숙영씨(75)는 화단의 '문화인(文畵人)'으로 불린다. 30여년간의 화업과 함께 《강남 아리랑 1,2,3》 《긴꼬리딱새 날다》 《야성의 숲》 《가시나무 숲》 등 장편 소설 20권을 출간했고,최근에는 금혼(金婚)서화집 《꽃 속의 꽃 꽃 꽃》(문학나무 펴냄)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문학과 미술의 경계에서 신표현주의 경향의 격렬한 색채감을 접붙이며 '문학적 회화'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문학적 상상력이 그의 붓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 '아시아 우수작가 워크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송씨는 "문학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험한 애틋한 사랑과 이별,기쁨,즐거움 등 갖가지 추억을 때묻지 않은 자연과 응축시켜 화면에 녹여냈다"고 말했다.

라디오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다 1960년 김동리 선생이 추천한 소설 <원근법>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송씨는 30여년 전부터 미술 작업을 병행해왔다. 그는 2004년 신미술대회장상을 비롯해 단원미술제 입상,신사임당미술대전 입상,남농미술대전 입상,부천 단원미술상,한 · 중미술대전 우수상,중경아세아미술대전 우수상 등을 받으며 화가로서의 재능을 보여줬다. 60대 후반에는 미국 LA로 건너가 4년간 유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국내 화단에서는 숭고한 자연의 미감과 신비감을 화폭에 살려내는 구상 화가로 주목받고 있다.

송씨는 "30여년에 걸친 화업은 문학적 테크닉과 회화의 상상력을 극대화해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는 조화로운 세계로의 도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소녀 시절 그림에 빠졌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새롭게 '증축'한 미의식을 마치 이야기하듯 형상화해낸다. "1990년대 초 의사로부터 긴장성 두통(tension type headache) 진단을 받고 펜을 놓았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화업에 뛰어들었어요. 요즘 어릴적 유난히도 색감의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내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에요. 그때 손목 너머 캔버스에 수놓은 세상이 다시 화폭에서 움트고 있어요. 붓을 쥐면 싱그러운 옛 추억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

지난해 무릎 관절 수술을 이겨내고 서울 성내동 작업실에서 하루 5~10시간 작업하는 그는 화업을 '정성의 산물'로 규정한다. 그에게 그림은 석공이 돌을 쪼듯 아름다움을 새기는 희망의 작업이다.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결사적으로' 한다. 캔버스 앞에 앉아 매일 '색채의 마술사'처럼 자연과 인간을 채색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인생살이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녹슬고 얼룩진,음습하고 축축한 이야기보다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다. 그의 작업 주제 역시 '자연과 인간에 관한 단상'이다.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연의 풍경을 화면에 새로운 스토리로 입혀봤어요. 그림에는 화가가 채울 수 있는 여백이 많죠.문학이 치열한 삶의 무대라면 그림 위의 사람은 배우가 돼 소설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거죠."

비록 기력은 없지만 작업실에 앉아있을 때 행복과 자유를 느낄수 있다는 그는 "국내 문화계에서 '영원한 현역'으로 남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다"며 "내 작품 세계와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이며 내 작품을 찾는 이가 없다면 그 역시 숙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초 그동안 제작한 그림 500여점 중 일부를 꺼내 문우(文友)돕기 자선전에 걸 계획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