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弗=84엔'에도 차분…日기업 '엔高' 맷집 세졌다

혼다 美판매 89%가 현지생산
엔화결제 늘고 수출지역 다변화

간 총리·日銀 총재 '전화회담'
외환시장 개입 언급 안 해
일본의 엔화 가치는 최근 달러당 84엔대로 15년 만에 최고치까지 올라갔다. 일부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가 1995년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인 달러당 79.75엔까지 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의외로 차분하다. 정부에 엔고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그리 크지 않다. 그동안 수차례의 엔고 한파에 대응하면서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일본 기업이 엔고로 입는 타격이 약화됐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3일 보도했다. 노무라증권이 주요 제조업체를 분석한 결과,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가 1엔 오를 때 경상이익은 1.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엔 이 감소율이 2.1%였다. 지난 10년간 엔고에 따른 제조업체의 이익 타격이 절반으로 약화됐다는 얘기다. 일본 제조업체의 엔고 저항력이 강해진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생산 확대다.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의 해외 생산 비율은 1995년 8.1%에서 2009년 17.8%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자동차 등 가공형 제조업은 25%를 넘었다. 예컨대 도요타자동차 4대 중 한 대는 해외에서 만드는 셈이다. 혼다자동차도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델의 89%를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기업들의 통화 전략도 엔고 대응형으로 바뀌었다.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사용하는 결제통화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달러가 48.6%,엔화는 41.0%였다. 2000년 하반기 달러 52.4%,엔화 36.1%이던 것과 비교해 엔화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그만큼 엔화 가치 변화에 영향을 덜 받게 됐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그룹 내 계열사 간 거래가 국제화된 것이 엔화 결제 비중을 높인 결과를 낳았다"며 "어쨌든 엔고에 대한 내성은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출 대상국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아시아 신흥국으로 옮겨 오면서 달러화 결제 수요가 줄어든 면도 있다.

주요 제조업의 엔고 저항력은 높아졌지만 그로 인해 일본 국내 경제의 기반은 약화됐다. 일본 기업들이 엔고에 대비해 해외 생산 확대에 주력하면서 내수가 타격을 입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08년 일본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 고용인원은 452만명이었다. 1995년의 233만명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제조업의 해외 현지법인 설비투자도 1995년 1조7000억엔에서 2008년 3조6000억엔으로 증가했다.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해외 투자에만 써 국내 산업의 공동화와 실업 증가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내수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 직접투자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비중은 종업원 1000명을 넘는 업체가 36%이지만 200명 이하인 기업은 10% 미만에 그친다. 중소기업들은 그나마 엔고 저항력도 키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이날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와 15분간 전화 회담을 갖고 엔고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주목했던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해선 "특별히 의견을 나누지 않았다"고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은 전했다. 센고쿠 장관은 "두 사람이 앞으로 직접 만나 대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