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공직자 청빈'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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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과정의 불법·비리가 문제지난날 부자가 낙마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상속으로 재산이 불어난 장관후보자가 낙마하는 일도 있었다. MB정부 초기 '강부자내각' 소동이 벌어졌고,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대선과정에서 재산 관련 의혹에 시달리다 급기야 재산 헌납을 약속하기도 했다. 공직자 재산 시비나 부자 낙마 이야기는 또 다른 한류 블랙코미디 한 편이다. 일본과 중국의 혐한류 세력에게 그 얼마나 통쾌한 웃음거리일까. 전쟁과 빈곤의 상징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원조공여국 클럽으로 발돋움했다고 스스로 감격해 마지 않는 이 나라를 비웃는 데 그보다 더 좋은 소재가 있을까.
재산과다 자체는 시비 말아야
공직자와 재산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무슨 연관이 있기에 매번 인사청문 때마다 부인,자녀 할 것 없이 재산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것일까. 공직자의 재산에 대한 지배적인 시각은 공직자는 청빈(淸貧)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공직자가 무슨 재산이 그리 많나. 이번 인사청문 대상이 된 공직후보자 중에도 돈이 많다면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 분이 있다. 권력이나 돈,어느 하나면 몰라도 둘을 모두 갖는 건 욕심이라고 꼬집는 이들도 많다. 도덕,윤리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국민들 사이에 위화감을 불러일으킬까 우려하기도 한다. 국민 정서를 생각해서라도 가급적 부자는 피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가지는 것은 단연 재산축적 과정의 불법이나 비리 때문이다. 성공한 고위공직자들에게 찬사를 보내면서도 탁부(濁富)의 선입견에서는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정상모리(政商謀利)의 의혹에 익숙하다. 부정부패나 권력남용,정경유착이 그 줄거리를 이룬다. 여기에는 고위직에 대한 억하심정도 적지 않다. 그런 지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을까,이 와중에 경쟁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반면 부자의 윤리나 선행,사회공헌은 먼 나라의 낯선 이야기일 뿐이다. 부자 행세를 하거나 정승처럼 돈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 못지않게 분노와 증오가 차오르기 십상이다. 그런 사람들이 장 · 차관 후보로 등용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정서를 정치인들이 모를 리 없다. 우선은 야당이 앞장서지만 국민정서라는 파도를 타며 TV 화면에서 스타탄생을 꿈꾸는 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한국인들은 결국 돈 많은 공직자를 싫어하는 걸까. 부자 공직자에 대한 안티는 정치인들뿐 아니라 언론과 지식인까지 합세해 만들어내는 합주 포퓰리즘이다. 지금 인사청문을 받고 있는 공직후보자들의 경우 재산 과다 보유나 부동산 투기 의혹이 과거보다는 그래도 좀 덜 한 것 같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공직자 재산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가,오피스텔,재개발 딱지 등 돈 되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사들이는 행태는 아무리 봐도 고위공직자에 대한 윤리적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자본주의로 산 지 벌써 수십 성상,이제 공직자의 재산에 대한 시각도 정상화할 때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장 · 차관 후보가 재산도 모았다고 해서 모두 뭔가 구린 데가 있을 거라며 도매금으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재산 취득 또는 증식과정의 불법이나 비리라면 몰라도 재산 과다 자체를 문제 삼는 것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정상적으로 사회적 사다리를 올라온 사람이라면 너무 재산이 적은 것도 문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건강한 부라면 공직자라고 해서 배척할 일은 아니다. 공직자가 성직자는 아니다. 가질수록 더 가지려 하는 게 문제지만,이제는 부패의 유혹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강한 부자 공직자들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