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Trend] 경영노트‥10년 후 먹을거리 찾는 주인공은 엘리트보다 '집념의 말썽꾸러기'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일본에서 섬유 가공업은 사양산업이었다. 일본 후쿠이(福井)현의 염색업체 세렌은 1889년 창업해 100년간 안정적으로 경영된 장수(長壽) 기업이었지만,석유 위기와 엔고(高)로 인한 불황을 거치며 도산 일보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러나 2008년 이 회사는 매출액 1129억엔,경상이익 73억엔을 내는 일본 최대 자동차시트업체가 됐다.

드라마틱한 성공을 이끌어 낸 주역은 가와다 다쓰오(川田達男) 현 사장이다. 섬유산업이 호황이던 1962년 입사했다. 그는 사고뭉치였다. 입사 2개월 만에 회사 경영방침에 의문을 품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주문하는 대로 염색만 하면 회사 실적이 경기에 지나치게 좌우되고,사원들이 주체성을 발휘할 수 없으며,따라서 사원의 장래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익률이 10%에 이르던 세렌에서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와다는 '불평불만자' 취급을 받으며 한직에 배치됐다.

세렌의 이익률이 나빠지기 시작하던 1970년대,가와다는 한 고객으로부터 자동차 시트용 섬유를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마이카' 붐이 일던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에는 염화비닐 시트가 사용됐다. 회사는 "천으로 시트를 만들면 잘 해지고 탈색된다"며 반대했지만,가와다는 공장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비밀리에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1976년 도요타 미쓰비시자동차 등이 그의 제품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는 출세 가도를 달렸지만 염색업을 주로 하던 회사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회사가 도산 위기에 내몰린 1987년 오너는 "회사를 구해달라"며 그를 최연소 사장으로 발탁했다. 가와다는 염색업을 고집하는 임원들을 강등하고 개혁에 매진하면서 자동차시트 사업에 주력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회사 실적은 좋아지기 시작했고,2006년에는 매출 1000억엔을 돌파했다.

캐논의 가쿠 류자부로(賀來龍三郞) 전 회장도 가와다 사장과 비슷하다. 그는 면접을 보면서 취미를 문제 삼는 오너에게 "머리를 써야 하는 마작이 취미라서 무엇이 나쁘냐"고 대들었다. 가쿠 전 회장은 카메라로 유명하던 캐논을 사무기기업체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발전기와 소재사업 등을 주로 하던 이비덴의 주력 업종을 1960년대엔 건재사업,1980년대에는 전자부품사업으로 바꾼 다가 준이치로(多賀潤一朗) 상담역도 말썽꾸러기였다는 점에선 가와다 사장이나 가쿠 전 회장에 뒤지지 않는다.

이들의 사례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몇 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주력사업의 수명이 다한 뒤 새 사업을 시작하면 때가 늦다는 것이다. 적어도 10년 전부터 다음 사업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는 신규사업을 발굴하는 것은 회사의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셋째는 이런 사람은 '육성'되는 것이 아니라 '발굴'된다는 것이다.

'Yes맨'들만으로 구성된 회사에서 주력 사업을 전환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위기에 빠진 기업을 구하는 것은 대체로 엘리트 사원보다는 강한 자부심과 집념을 가진 직원들이다. 경영자라면 이들의 에너지를 한번쯤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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