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美 더블딥 공포'] 엔화 15년 만에 최고…달러당 83엔

9월 중 80엔선 무너질 수도…日, 외환시장 개입 시사

정부 뒷북 대응 '엔고 부채질'…美는 수출 늘리려 弱달러 용인
日만 시장개입…효과 미지수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25일 아침 재무성에 출근하자마자 기자실부터 찾았다. 그는 엔화 가치 급등과 관련,"필요할 때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강력 시사한 것이다. 전날 저녁까지도 그는 시장 개입에 대해 "노 코멘트(언급 안함)"라고 말했다.

노다 재무상을 움직인 건 전날 밤 엔화의 급등이다. 24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15년 만에 최고치인 달러당 83엔대까지 치솟았다. 직전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85엔선이었던 엔화가 2엔 안팎 급등한 것.후폭풍으로 도쿄 증시는 전날에 이어 25일에도 폭락해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노다 재무상은 이날 낮 간 나오토 총리와의 긴급 회의에서도 "외환시장 움직임을 주의깊게 살피라"는 지시를 받고, "필요할 땐 행동에 나서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 효과가 제한적이어서다. 미국이 달러 약세를 용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만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인다고 대세를 뒤집긴 어렵다.

◆속수무책이 엔고 부채질

엔화 가치는 올 3~4월까지만 해도 달러당 95엔대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그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최근엔 달러당 83엔 선까지 위협한다. 엔화가 강세를 보인 건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강해서가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유로와 달러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도 디플레이션(경기침체에 따른 물가하락)에 빠져 있지만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나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투기자금까지 가세해 달러를 팔고,엔화를 사들이고 있는 게 최근 엔고의 배경이다. 일본 정부의 무대응이 촉매역할을 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엔화는 지난주부터 가파른 상승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간 총리는 이번 주 초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와 회담을 갖고,엔고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간 총리는 23일 시라카와 총재와 15분간 전화통화를 하는 데 그쳤다. 통화 내용도 알맹이가 없었다.

엔고를 잠재울 '한마디'를 기대했던 시장은 실망했다. 그 결과가 24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급등으로 나타났다. 간노 미키오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은 "외환시장 개입이든,추가적 금융완화든 정부와 일본은행이 엔고에 대응해 취할 조치는 얼마든지 있다"며 "대책을 서두르지 않은 게 엔고를 부채질했다"고 말했다.

◆日 정부 뒤늦게 대책 준비엔화값이 치솟자 일본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수출 경쟁력이 무너지고, 증시가 폭락해 일본 경제가 나락으로 빠질 것이란 위기감이 크다. 엔고 탓에 도쿄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는 올 들어 1800엔(17%) 이상 빠져 세계 주요 증시 중 가장 부진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일본 당국이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무성은 외환시장에 개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실제 개입하면 6년5개월 만이다. 일본은행은 조만간 임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추가 금융완화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시장에 엔화를 풀어 간접적으로 엔화 가치를 억제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엔고가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외환시장 개입 효과는 한계가 분명하다. 미국과 유럽 등이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을 위해 자국통화 약세를 용인하는 상황에서 일본만 외환시장에 개입(달러 매입,엔화 매각)하는 건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엔화 급등,주가 폭락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일본 정부의 딜레마다. 한편 시장에선 9월 중 엔화 가치가 사상 최고치인 달러당 79.75엔(1995년 4월)까지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