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새 역사는 늘 호기심 많은 거인들이 만들었다

위대한 탐험가들 | 로빈 한부리-테니슨 엮음 | 이병렬 옮김 | 21세기북스 | 304쪽 | 5만원

500년 전 해양탐험부터 미지의 세계를 들춰낸 영웅 40여명의 발자취
헝가리 출신의 탐험가 마크 오렐 스타인(1862~1943)이 1900년 5월 중국 서부 타클라마칸 사막의 실크로드 왕국인 호탄 답사에 나선 것은 38세 때였다. 1890년대에 인도 문자인지 이란 문자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언어로 종이에 쓴 유물을 처음 본 이래 인도 · 이란 학자로서 흥미를 느낀 그는 중국 역사와 고승 현장의 기록에 남아 있는,서기 1000년께 번성했던 옛 왕국을 찾아가기로 했던 것이다.

답사에 필요한 허가를 얻고 경비를 확보하는 데 2년이나 걸렸지만 실제 탐험은 훨씬 더 걸렸다. 그는 이 지역에 무려 30년이나 발목을 잡힌 채 네 차례 원정을 감행했고,조랑말을 타거나 걸어서 다닌 거리가 1만6000㎞에 달했다. 그래도 그는 동상으로 자신의 발가락을 2개 잃는 것보다 쿤룬산맥에서 아끼던 조랑말의 죽음을 더 슬퍼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그리고 끝없는 열정과 노력은 그로 하여금 둔황석굴을 보게 했고,중국어와 티베트어 등 여러 언어로 기록된 수천 점의 필사본과 인쇄문서,불화 수백 점 등을 만날 수 있게 했다. 스타인의 이들 유물 가운데 일부를 런던으로 보냈고 나머지 유물들은 파리,베이징,상트페테르부르크,교토 등으로 흩어졌다. 유물을 분산시켰다는 것 때문에 스타인은 훗날 발굴의 공로와 함께 도굴의 비난도 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발굴과 발견으로 인해 실크로드 동쪽의 여러 왕국과 동양 제국의 역사 · 문화는 세계 역사의 일부로 주목받게 됐다.

1898년 북극점에 도달한 프리됴프 난센은 '극지 영웅'의 월계관을 얻기 위해서는 재산과 양심,제정신 등 모든 것을 팔아치운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셋을 모두 지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부유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린란드 동부 해안을 항해하는 노르웨이 바다표범 포획선에서 4개월을 보내면서 북극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그리고 1895년 3월 썰매 3대와 대나무 카약 2대,개 28마리를 데리고 북극탐험에 나서 4월8일 북위 86도 14분 지점에 도착했다. 당시까지 인간의 발길이 닿은 가장 북쪽 지점이었다. 《위대한 탐험가》들은 이처럼 바다와 육지,남극과 북극,우주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던 탐험가 40명의 삶과 그들이 이룬 성과를 소개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호기심이 모든 걸음에 날개를 달아준다"고 했던가. 인류의 역사는 호기심과 함께 발전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최초의 탐험은 호기심보다 생존의 문제였다. 좀 더 충분한 먹을거리를 얻고 더 안전하게,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선 비옥한 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알고자 했고,죽음을 불사하면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다.

이 책에는 탐험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500년 전의 해양탐험을 시작으로 육지,강,극지빙하,사막,지구상의 생물 등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행적을 담고 있다. 프란시스 가르닌에는 메콩강 수로를 따라가기 위해 거의 미친듯이 먼 길을 나섰고,에드워드 윌슨은 스콧과 남극 원정에 두 차례 도전한 끝에 성공했지만 아문센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안타깝게도 귀환 도중 스콧과 함께 죽음을 맞았다. 나인 싱은 외부인들의 입국이 금지된 티베트 땅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세어가면서 먼 길을 걸었고,유리 가가린은 우주 캡슐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

이 책에는 이처럼 해양탐험에 나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바스코 다가마,제임스 쿡을 비롯해 육지탐험가 에르난도 데소토 · 루이스와 클락 · 리처드 버튼,강을 탐험한 샹플랭 · 제임스 브루스 · 헨리 모턴 스탠리,극지 빙하로 달려간 난센 · 윌슨 · 아문센,사막탐험가 찰스 스튜어트 · 해리 필비,미지의 생물을 찾아나선 알렉산더 폰 훔볼트 등 수많은 탐험가들의 행적이 담겨 있다.

이들이 탐험을 통해 발견한 미지의 세계는 인류에게 경이로움과 다양성이라는 축복을 선물했다. 하지만 이들의 열정과는 무관하게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구는 많은 병폐를 안게 되기도 했다. 이른바 '탐험의 저주'다. 새로운 세계에 가해지는 개발의 칼날이 지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