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100년 전 '망국'의 아픔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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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힘 모자라 전쟁 없이 뺏겨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8월22일 제 3대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병합조약을 체결했다. 공식발표는 29일에 이뤄졌는데,이날을 계기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35년간 식민시대의 시발점이 된 8월29일부터 우리 민족은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땅도,하늘도 빼앗긴 것이다.
부국강병과 애국에 모두 나설 때
그동안 일본은 조약을 통해 합법적으로 조선을 병합했다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강제로 이뤄진 한일병합조약이 불법이며 원천무효인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그보다 5년 전 역시 강제적이었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은 2만명 이상의 군대를 주둔시키며 위협을 가하다가 1910년 국권을 찬탈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아무리 병합이 원천무효라고 해도 나라를 빼앗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씨개명을 하고 신사참배를 해야 했던 민족의 아픔,식민지 경험의 수치심과 모욕감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말이다. 흔히 우리는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고 하여 이완용을 비롯한 다섯 명의 대신을 '매국노'라고 부르며 나라가 망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나라를 판다는 의미의 '매국(賣國)'이란 잘못된 이름이다. 어떻게 나라를 팔 수 있겠는가. 땅도 팔 수 있고 집도 팔 수 있지만,나라는 팔 수 없다.
나라라는 것은 지키든지,빼앗기든지 둘 중의 하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식민지 국가를 보더라도 그것은 강제로 빼앗긴 것이지 자기일신의 영예를 탐해 나라를 파는 극소수의 매국노가 있어 도장을 위조하고 왕을 겁박하여 자기 나라를 다른 나라에 넘기는 일은 없다. 만일 나라가 부유하고 강성했다면,아무리 몇 사람의 매국노가 공모하여 나라를 파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해도,그 뜻을 이룰 수는 없는 일이다. 수많은 애국시민들이 분연히 일어나 '매국노'들을 처단하고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나라를 빼앗긴 경우를 보면,거의 예외없이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고 패자는 속국이나 식민지로 전락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쟁조차 없이 도장을 찍어 나라를 일제에 넘겨주는 치욕을 겪었다. 왜 그랬을까. 한마디로 나라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힘이 모자라면 지혜라도 있어야 했는데,세계의 흐름을 가늠해보는 지혜조차 부족했던 것이다.
우리는 국치일을 생각할 때마다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세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하는 이치는 똑같기 때문이다. 또 바로 그것이 100년 전 망국의 서러움을 생생하고 엄숙하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나라를 왜 일본에 빼앗겼는지에 대해 뼈를 깎는 치열한 반성을 하기보다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다음 우리 아버지세대가 용감하게 살았는지, 비겁하게 살았는지에 대한 문제만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주춧돌을 놓은 사람들조차 '친일파'였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망국에 대한 진정한 반성은 다시는 일본과 같은 외세에 나라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되어야지 일제하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 사람들까지 '낙인'을 찍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결의의 핵심적 화두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욱일승천하는 기세의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부국과 강병,나라사랑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