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선거에 밀린 일본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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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전 9시15분께 도쿄 나가다초에 있는 총리 관저.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간 나오토 총리 집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엔고 여파로 도쿄 증시의 닛케이 평균 주가가 1년 전 정권 교체 후 처음으로 9000엔 선을 위협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는 4분 만에 끝났다. 간 총리는 9시50분부터 초선 의원 간담회에 참석해야 했다.
간 총리가 초선 의원들과 정치토론에 열을 올린 오전 2시간 동안 엔화가치는 달러당 84엔대로 치솟고,주가는 9000엔 선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다음 날 미국 뉴욕시장에서 엔화는 15년 만의 최고치인 달러당 83엔대까지 뛰었다. 닛케이 주가는 사흘 연속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엔화 급등,주가 급락에 휘말린 일본에선 당국의 무사안일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좀처럼 정부 욕을 안하는 일본 금융사 관계자들의 입에서 성토가 이어진다. "미국의 경기지표 악화로 엔화 상승은 예견돼 있었다. 당국이 기민하게 대응했다면 엔화가 이렇게 뛰진 않았을 것이다. "(미쓰비시UFJ은행 이코노미스트) "정부가 확실한 정책의지를 보이지 못한 게 엔화상승을 부채질했다.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일본 정부의 대응은 분명 태만했다. 지난주 초 간 총리는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두 사람이 만나 명확한 시장대응 방침을 피력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간 총리는 시라카와 총재를 만나지 않고,23일 낮 15분간 전화통화만 했다. 시장은 엔고 대응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엔고를 가속화시켰다.
엔고와 주가 하락이 간 총리의 머리 속에서 뒷전에 밀린 이유는 있다. 오는 9월14일의 민주당 대표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어서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선 여당 대표 선거에서 떨어지면 총리직을 내놓아야 한다. 자신의 정치운명이 걸린 선거를 앞두고 금융시장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특히 민주당 내 최대 계파 수장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출마를 선언한 터다. 간 총리가 시장 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주 사흘 연속 초선 의원들과 마라톤 간담회를 가진 것도 표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물론 정치인에게 정권 유지는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그 정권도 국민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 국민 경제를 팽개친 정권연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본적으론 걸핏하면 선거가 돌아오는 일본의 비효율적 정치시스템 탓도 크다. 4년 임기 중의원과 6년 임기 참의원(절반씩 3년마다 선거) 등 양원제인 일본에선 선거가 너무 잦다. 최근 4년간 중의원 선거와 참의원 선거 두 번 등 모두 세 번의 큰 선거가 있었다. 간 총리는 취임 석 달 만에 또 선거로 평가받게 돼 있다. 선거 때마다 여야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 경쟁을 벌이고,기존 정책도 선거용으로 왜곡하기 일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사카모토 에이지 편집위원은 "선거로 일본이 침몰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간 총리는 지난 주말 도쿄와 규슈의 중소기업을 잇따라 방문했다. 와이셔츠의 팔을 걷어 붙이고 나타나 엔고 피해를 물었다. 누가 봐도 선거를 의식한 퍼포먼스였다. 경제대책 마련은 늘 뒷북을 치면서 행사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 이러니 경제가 살아날 턱이 없다. 지금 일본은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타산지석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간 총리가 초선 의원들과 정치토론에 열을 올린 오전 2시간 동안 엔화가치는 달러당 84엔대로 치솟고,주가는 9000엔 선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다음 날 미국 뉴욕시장에서 엔화는 15년 만의 최고치인 달러당 83엔대까지 뛰었다. 닛케이 주가는 사흘 연속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엔화 급등,주가 급락에 휘말린 일본에선 당국의 무사안일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좀처럼 정부 욕을 안하는 일본 금융사 관계자들의 입에서 성토가 이어진다. "미국의 경기지표 악화로 엔화 상승은 예견돼 있었다. 당국이 기민하게 대응했다면 엔화가 이렇게 뛰진 않았을 것이다. "(미쓰비시UFJ은행 이코노미스트) "정부가 확실한 정책의지를 보이지 못한 게 엔화상승을 부채질했다.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일본 정부의 대응은 분명 태만했다. 지난주 초 간 총리는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두 사람이 만나 명확한 시장대응 방침을 피력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간 총리는 시라카와 총재를 만나지 않고,23일 낮 15분간 전화통화만 했다. 시장은 엔고 대응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엔고를 가속화시켰다.
엔고와 주가 하락이 간 총리의 머리 속에서 뒷전에 밀린 이유는 있다. 오는 9월14일의 민주당 대표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어서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선 여당 대표 선거에서 떨어지면 총리직을 내놓아야 한다. 자신의 정치운명이 걸린 선거를 앞두고 금융시장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특히 민주당 내 최대 계파 수장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출마를 선언한 터다. 간 총리가 시장 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주 사흘 연속 초선 의원들과 마라톤 간담회를 가진 것도 표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물론 정치인에게 정권 유지는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그 정권도 국민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 국민 경제를 팽개친 정권연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본적으론 걸핏하면 선거가 돌아오는 일본의 비효율적 정치시스템 탓도 크다. 4년 임기 중의원과 6년 임기 참의원(절반씩 3년마다 선거) 등 양원제인 일본에선 선거가 너무 잦다. 최근 4년간 중의원 선거와 참의원 선거 두 번 등 모두 세 번의 큰 선거가 있었다. 간 총리는 취임 석 달 만에 또 선거로 평가받게 돼 있다. 선거 때마다 여야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 경쟁을 벌이고,기존 정책도 선거용으로 왜곡하기 일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사카모토 에이지 편집위원은 "선거로 일본이 침몰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간 총리는 지난 주말 도쿄와 규슈의 중소기업을 잇따라 방문했다. 와이셔츠의 팔을 걷어 붙이고 나타나 엔고 피해를 물었다. 누가 봐도 선거를 의식한 퍼포먼스였다. 경제대책 마련은 늘 뒷북을 치면서 행사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 이러니 경제가 살아날 턱이 없다. 지금 일본은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타산지석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