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는 식상해"…美 그래픽 레코딩 뜬다

화려한 색감 일러스트레이션
회의내용 한눈에…집중력 높여
HPㆍ델ㆍ찰스슈왑 잇단 도입
그래픽 레코더 일당 400만원
경영 컨설팅업체 액센츄어의 선임매니저 마크 파피아는 몇 달 전 중요한 고객사와 회의를 앞두고 고심 끝에 줄리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예술가를 회사로 데려왔다. 미팅 주제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 젊은 예술가는 회의실 한쪽 벽에 가로 2.4m,세로 1.2m 크기의 큰 종이를 붙인 뒤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은 기차와 구름,자동차,사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으며 다채로운 색깔도 입혔다. '창의성'과 '혁신' 등 논의를 관통하는 어휘도 들어갔다. 파피아는 "참석자들이 전례없이 활발하게 토론했는데 삽화가 큰 역할을 했다"며 "임원진도 그림 사용에 대해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졸리는 파워포인트 발표는 가라

최근 미국 재계에서 '그래픽 레코더(graphic recorder)'라는 직업이 뜨고 있다고 경영 월간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9월호에서 보도했다. 액센츄어 회의실에 그림을 그린 스튜어트가 그래픽 레코더이고 작업물을 '그래픽 레코딩'이라고 한다.

화려한 그림과 글씨 등은 참석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긴장감을 풀어줘 자연스러운 토론과 의견 개진 등 '브레인 스토밍'이 가능토록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레코더 브리 산체스는 "입을 다문 채 회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 그림을 본 뒤 신이 나서 대화에 참여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고 말했다. 파워포인트 회의에 식상한 기업들 사이에서 1970년대 유행했던'아날로그' 감성의 그래픽 레코딩이 부활하고 있다고 HBR은 전했다. 파워포인트는 편리하고 익숙한 반면 집중력을 저하시켜 직원들이 어두운 회의실에서 조는 등 부작용이 많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기존의 파워포인트가 사무직의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있다.

◆HP 델 J&J 등 활용 기업 증가

그래픽 레코더를 활용하고 있는 회사는 휴렛팩커드(HP),델 등 정보기술(IT) 기업과 존슨앤드존슨(J&J) 같은 생활용품 회사,찰스슈왑을 비롯한 온라인 주식중개 업체 등 업종이 다양하다. 이를 채택하는 기업도 느는 추세다. 식음료업체 크래프트푸드는 2005년부터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에 그래픽 레코더를 쓰고 있다. 제이슨 다크 인사담당 이사는 "회의 때 사용한 그림의 일부만 봐도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며 "그래픽 레코딩은 사람의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레코더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기업 경영에 대한 '감'이 있는 미술 전공자들이 많지 않아 입소문이 난 이들의 일당은 3500달러(약 400만원)에 달한다. 이들이 그린 삽화는 사진파일로도 만들어져 이메일 등을 통해 전사적으로 공유되며 향후 회의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등 '돈 값'을 충분히 한다는 게 기업들의 중론이다.

◆전문가들 "효과 있다" 이구동성

마틴 에플러 스위스 생갈대 교수는 삽화물이 기억력 상승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그는 "발표자는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면서 다음 슬라이드에 나올 것을 외워 회의 방향을 미리 정해 버린다"며 "반면 그래픽 레코딩의 경우 사람들의 의견 개진에 따라 실시간으로 그림이 추가되는 등 살아있는 토론이 가능해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 그래픽 레코딩

graphic recording.활발한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회의실 벽면에 그리는 창의적인 삽화.정형화된 파워포인트 대신 이를 활용하는 기업이 HP 델 J&J 등 크게 늘고 있다. 삽화를 그리는 그래픽 레코더의 몸값은 하루 최고 3500달러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