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청년 백수는 눈높이를 낮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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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달러 일자리 강요는 안될 말청년 실업자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한다. 일자리는 널려 있고 공장 기계는 놀고 있으며 웬만한 중소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허구에 찬 비아냥이거나 기성세대의 오류와 책임을 청년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실로 고약한 화법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결코 빈둥거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른들은 우선 인정해야 마땅하다. 동계 올림픽에서 한껏 익살을 떨었던 모태범이 그랬던 것처럼 젊은이들은 낡아빠진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세계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그런 열정적인 세대다.
기득권 해체로 좋은 직업 늘려야
직장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직장을 구해야 하나. 아니다! 한국은 이미 날품을 팔아야 하는 그런 빈곤국이 아니다. 우리가 직장을 필요로 하고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은 말그대로 우리의 삶을 실현하고 자신의 가치를 펼쳐 보이고 싶은 것이며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불어넣고자 하는 그런 존재감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이지 당장의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눈 높이 낮추라며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의 변두리 일감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정말 뻔뻔스런 일이다. 중소기업 미스매치 문제에 대한 준엄한 훈계는 더욱 위선적이다. 대졸자들이 대기업을 선호하거나 공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모두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직업의 조건 때문이다. 월급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에 입사하더라도 몇 달 못 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우선 낡아 빠진 봉건적 경영은 사절이다. 작업복을 입고 땀을 흘리기 싫어서가 아니다. 어렵사리 중소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사장님은 부동산이나 증권투기 아닌 본업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고,총무부장은 조카들이 연달아 틀어쥐고,자금운영은 불투명하며,종업원을 종복 부리 듯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누가 이 직장에 젊음을 바치려 할 것인가. 물론 이는 일부 미꾸라지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런 인식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학생들이 대기업을 욕하면서도 굳이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안달하는 것은 성장할 기회가 보장되고 인재를 키워주며 경영이 투명하고 열심히 하면 장차 최고경영자(CEO)도 될 수 있는, 그런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스스로 그런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동안은 결코 인재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은 고교졸업자의 86%가 대학을 가는 나라다. 학비와 생활비 기회비용을 합치면 3억~4억원은 족히 투자한 상태에서 '매몰비용은 잊어라'는 식의 조언이라면 젊은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더구나 좋은 직업은 각 직군들이 틀어쥐고 앉아 거대한 진입장벽을 치고 있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교수 약사 교사 공기업 대기업 공무원 등 소위 좋은 직업은 이미 자리를 차지한 어른들이 강력한 기득권을 틀어쥐고 매년 1000명,2000명으로 인원을 통제하고 이익단체를 만들어 좁은 문을 더 좁게 만들고 그것도 안되면 강성노조라도 만들어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그렇게 좁은 문을 만들어 놓고 너희들은 동남아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추라? 어림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런 방식은 나라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
기득권을 해체하지 않으면 좋은 일자리는 없다. 청년들이 전문직업에 합당한 전문지식을 쌓도록 더욱 독려하고 그들에게 그에 합당한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 우리가 전교조식 평준화 교육을 비판하고 강성노조를 비판하고 내수분야의 기득권 체제를 비판한 것이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나.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가 왜 그들의 미래 세대들에게 1만달러짜리 일감을 받아들이라고 강조하나. 우리는 진정 좋은 일자리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말인가.
정규재 <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