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늪에 빠진 직장인] (끝·3) 처음엔 눈치만…말문 여니 마음 속 응어리 술술

(끝·3) 정신건강관리 제도화 시급

본지 기자 심리상담 받아보니
"누가 들으면 어떡하지"…나도 모르게 주의 살펴
"문제 있으니 상담 받았겠지"…편견이 상담실 문턱 높여
"우울증 판정을 받으면 어쩌나…."

낯선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3일 경기도 파주의 LG디스플레이 '마음사랑'상담실을 찾았다. 사무동 2층에 자리잡은 상담실은 다소 구석진 곳에 있었다. 직장 선후배들의 '눈'을 의식해 상담실 찾기를 주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임상심리전문가인 황경남 실장(32)이 기자를 맞았다. 매뉴얼대로라면 50분씩 총 15회의 상담을 받아야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기자의 말에 황 실장은 성격검사와 상담으로 된 1시간 남짓한 프로그램을 권했다. 한동안 푹신한 의자에 앉아 90여개 문항으로 이뤄진 MBTI(마이어스 브릭스 성격 유형검사)를 치렀다. 결과지를 내고 수분 뒤 황 실장은 성격분석표를 보여줬다. "요즘 어떤 고민들을 많이 하시나요?" 잠시 머뭇거렸다. 취업과 결혼,그리고 출산을 통해 새롭게 얻은 책임감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단박에 말하긴 어려웠다. 다시 이어진 질문은 좀 더 직접적이었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에둘러 기자와 엄마,아내,며느리,딸이라는 역할을 잘해내고 싶단 말을 꺼냈다. 한 번 말문을 여니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풀렸다. 그렇게 대화는 약속한 1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이어졌다.

황 실장은 성격검사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10년 뒤 행복한 나의 모습'을 그려본 뒤 이에 맞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는 방식이었다. 육아고민에 대해선 "엄마와 아이 간의 애착관계는 전적으로 시간의 양보다 질에 의해 결정된다"며 다독여줬다. 말 한마디였을 뿐인데도 그 순간만큼은 육아에 집중하지 못하는 워킹맘의 죄책감이 다소 줄어든 기분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 듯했다. 한 달에 '마음사랑'상담소를 찾는 LG디스플레이 임직원들은 평균 150명 남짓.팀원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팀 단위로 서로의 '성격 차이'를 알아보러 오는 사람도 많지만 더러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2007년 7월 처음 상담실 문을 열었을 땐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한 달에 한두 명이 고작일 정도로 거부감이 심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란 편견 때문이었다. 팀원 간 성격분석 등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임직원 자녀들의 진로상담까지 포함한 가족상담을 시작하면서 차츰 방문자 수가 늘었다. 이혼위기에 놓인 직원부터 직무 스트레스로 2년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고참 간부,자살 충동을 느끼는 직원까지,다양한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황 실장은 점심시간 식당을 이용할 땐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고 했다. 상대방이 '아는 척'하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인들은 따로 시간을 내서 외부 상담실을 찾기가 어려운 데다 내부에 상담실이 있어도 직장에 소문이 날까 두려워 우울증세가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 차원에서 상담실 출입문턱을 낮춰주는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주=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