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30초 손씻기

여름이 되면 한두 번씩 배탈이 나곤 했는데,올해는 그냥 넘어가나 보다.

뜨거운 햇살에 지친 몸을 냉기가 폴폴 풍기는 차가운 음식으로 식히려다 배탈이 나곤 했다. 이런 점에서 배탈은 '여름의 친구'라 할 만하다.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기온 때문에 주방에서 위생적인 음식 보관이 어려워지는 것도 배탈의 또 다른 이유다. 미생물 학자인 필자를 의식해 음식 관리에 특별히 신경써주는 아내 덕분에 집에서 식사하고 탈이 났던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직업병 탓인지 여름철 내내 음식 간수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음식을 덜어낼 때,설거지 걱정하지 말고 매번 새 수저를 쓰자." "냉장고에서도 세균은 자라니 너무 믿지 말아라."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후회 없이 버리자."

바이오 제약사업을 하는 특성상 나는 위생과 건강을 남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며칠 전 지방 출장을 가다가 들른 휴게소에서 우리의 위생관념이 좋아진 점을 새삼 확인했다. 화장실 입구에는 줄 서서 손을 씻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고,한쪽 벽면에는 손 소독 기구가 비치돼 있었다. 몇 해 전만 해도 보지 못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젠 모두들 너무나 당연시한다.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팬데믹 질병,조류독감 그리고 지난해 때아닌 백신 품절 사태를 일으켰던 신종플루는 '손 씻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운 일등공신이다. 몇 개월 전 손 소독제가 품절되고,각 방송사에서 손 씻기 캠페인을 벌이던 그때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다행히도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는 우리가 우려했던 만큼 확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만 명씩 대륙 간 이동을 하는 오늘날 미지의 전염성 질환이 속수무책으로 퍼진다면,중세의 흑사병 이상으로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새롭게 부각되는 질병은 있기 마련이며 이를 진단하고 예방,치료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예산이 소비된다.

나는 손 씻는 일이 가장 손쉽게,그리고 저렴한 비용으로 모든 분야의 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기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장편의 소설을 집필할 때도 10g 내외의 작은 펜을 드는 일부터 시작되고,큰 건물을 지을 때도 땅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거르는 일부터 시작되듯이,무서운 질병을 예방하는 일도 30초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손 씻는 일부터 시작된다. 작은 행동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다. 건강 지키기의 출발인 손 씻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젯밤 TV 사극에서 본 한 주막의 풍경은 이런 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주문을 받고 코 한 번 팽~ 하니 풀고 주방으로 들어가던 주모의 뒷모습,너무나 정겹게 그려진 그 장면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주모! 웬만하면 손 한번 씻고 상을 내올래요?"

정현호 < 메디톡스 대표 jhh@medytox.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