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레이건이 '살아있는' 이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는 두 명의 정치적 우상이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다. 공화당이지만 링컨에게서는 화합의 정치를 배웠고 같은 민주당인 루스벨트로부터는 개혁정신을 이어받았다. 오바마가 대선 경쟁자이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힌 것은 링컨의 가르침이었다. 의료보험 개혁을 강단있게 밀어붙여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루스벨트를 벤치마킹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선배 대통령이 있다. 조지 W 부시 전임 대통령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부시에게서 물려받은 탓이다. 1조4000억달러에 육박하는 재정적자 대부분과 이라크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부시의 유산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가 다가오자 다시 한번 부시의 등에 올라탔다. 공화당이 의회에서 각종 경기 부양책에 발목을 걸 때마다 "경제를 망친 부시 전 정부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이냐"고 반격한다. 부시 전 대통령의 실정을 재활용할수록 중간선거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

게다가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51%로 치솟았다. 오바마의 친정인 민주당과는 10%포인트 차이로 벌어졌다. 실업률은 여전히 9.6%에 달한다. 경기는 속시원하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1.6%로 급격히 둔화돼 '더블 딥'을 점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이 홈페이지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일반인 가운데 71%는 더블 딥 가능성이 예상된다고 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칫 취임 2년차 중간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2012년 재선가도에 빨간 불이 켜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초기 70%대를 넘본 그의 지지율은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상황이 악화되자 일부 언론은 물론 오바마 측 진보진영조차 보수진영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레이건은 1982년 중간선거를 맞아 지지율이 60%대에서 50%대로 추락했다. 실업률 10.8%,인플레가 6%에 달했으며 경제성장률은 뒷걸음질쳤다. 그랬지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상원에서 의석 54석을 유지했다. 하원에서는 26석을 잃는 것으로 선방했다.

레이건은 중간선거 과정에서 전임자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집요하게 재물로 삼았다. 자신을 따를 것인지,무능했던 카터 전 정권으로 되돌아갈 것인지 유권자들에게 요구했다. 그가 선택한 돌파전략은 과감한 감세,작은 정부,성장이었다. 감세대상은 전 계층과 기업을 아울렀다. 레이건은 이런 정책을 통해 미국 경제를 활황으로 이끌었고 연임까지 성공했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정치뿐 아니라 경제정책을 적극 차용할지는 두고봐야 한다. 현재 그는 부시 전 대통령이 도입한 부유층 감세정책을 연장하길 반대한다. 공화당은 부유층에서 세금을 거둬 부를 분배하려는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오바마를 공격한다. 미 기업들은 오바마의 '큰 정부'와 개혁정책의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꺼린다. 11월 중간선거 판세가 불리해지고 경기 회복이 지연될수록 오바마는 레이건을 닮아갈지도 모른다. 내년이면 레이건 탄생 100주년이다.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