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을 실현하라…'메타물질' 연구 경쟁
입력
수정
첨단 나노·광학 등 융합기술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클로킹(cloaking:은폐)하는 투명 외계 생물체나 주인공이 종종 나온다. 전쟁 게임에서도 클로킹한 병사나 전투기 등은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상당한 전력이 된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메타물질'은 클로킹을 현실화하기 위해 첨단 나노기술 · 광학 · 재료공학을 총 집결한 융합기술이다.
빛을 반대로 꺾는'음굴절' 원리
美 MIT '10대 미래기술' 선정
메타물질은 원자 · 분자 등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입자로 구성된 물질과 달리 금속이나 유전체(전기장 속에서 분극이 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 등 인공적 요소로 이뤄진 물질이다. 세계 각국 연구진은 미국 MIT대가 2007년 메타물질을 '10대 유망 미래기술'로 선정한 이후 최근까지 사이언스,네이처 포토닉스,네이처 머티리얼즈 등 저명 학술지에 관련 논문을 경쟁적으로 싣고 있다. 될성부른 신기술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빛의 성질을 바꾸다:음굴절빛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을 투과하면 입사하는 각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굴절(양굴절)한다. 물컵에 젓가락을 넣으면 아래로 꺾여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며 이를 '스넬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메타물질은 이와 달리 정반대로 굴절하는데 이를 '음굴절'이라고 한다.
메타물질이 음굴절하는 이유는 물질 내 기본 구조를 원천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의 눈은 빛의 반사나 양굴절 등을 통해 물질을 인식하게 된다. 반대로 빛이 어떤 물질과 부딪혔을 때 산란하거나 흡수되지 않고 물체를 감싸 흘러가 버리면 사람은 물질을 인식하지 못한다. 강물이 흐르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노 사이즈의 금속과 유전체의 주기적 배열 물질인 메타물질에서는 양굴절이 아니라 음굴절한다는 것이 클로킹의 이론적 배경이다. 따라서 빛을 흡수해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게 하는 '스텔스' 기술보다 더 진보한 개념이다. 빛은 자신의 파장보다 더 작은 구조가 있으면 해당 구조를 하나로 인식해 버리기 때문에 반사나 양굴절하지 않고 음굴절한다. 예를 들면 보통 파장의 길이가 400~650나노미터 수준인 가시광선이 400나노미터 이하의 구조에서는 빛의 성질이 음굴절로 바뀐다는 것이다. 작년 미국 UC버클리의 장샹 교수는 이 같은 개념을 2차원에서 처음으로 구현해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실었다. 구조적으로 메타물질은 빛과 같은 전자기파의 물성 중 대표적인 유전율(매질이 저장할 수 있는 전하량)과 투자율(물질의 자기적 성질을 나타내는 물리적 단위)을 조절해 음굴절을 만들 수 있다. 둘 중 어느 하나가 음이면 반사가 되고,둘 다 양이면 양굴절이다. 그러나 둘 다 음이면 음굴절이 되며 메타물질은 유전율과 투자율이 둘 다 음이 되도록 인위적으로 조절한 것이다.
◆전자현미경 수준 나노광현미경도 가능
빛이 물체를 통과할 때 소멸되지 않고 물체를 지나 진행할 수 있는 음굴절 원리를 이용하면 전자현미경(30만배 확대 · 100나노미터 이하 관찰 가능)과 같은 성능의 나노 광현미경 개발도 가능하다. 기존 광학렌즈가 회절 한계(빛이 자신의 파장 절반보다 작은 거리는 식별하지 못하는 현상)로 인해 극복할 수 없었던 분해능(상을 뚜렷하게 보이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고해상도 광렌즈를 제작할 수 있다. 광학현미경에 메타물질 광렌즈를 끼우면 전자현미경과 같은 분해능 구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광학현미경은 약 2000배 확대 관찰이 가능하나 빛의 회절 한계 때문에 200나노미터 이하의 관찰은 육안으로 불가능하다. 메타물질은 차세대 반도체 공정기술로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노미터 수준의 전자회로 기판 구조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전자빔 리소그래피의 초미세공정 기술을 메타물질 광렌즈를 사용한 나노 광리소그래피가 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작년부터 국내 최초로 '메타물질 기반 나노분해능 이미징 시스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인 최춘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광무선융합부품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세계적으로 3차원 구조에서 음굴절을 현실화시킨 곳은 없다"며 "향후 10~20년 내 누군가가 기술을 선점한다면 국방 등 각 산업 분야 파급력은 실로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