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기술보호주의의 부메랑

특허를 무기로 국내 제조업을 공격하는 외국 기업을 가리켜 우리는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고 부른다 .반면 국내 기업이 특허를 무기로 외국 기업을 공격하면 '특허전문회사'나 '창조적 지식기업'으로 치켜세운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최고의 기술개발,아니면 인수합병(M&A)을 하라"고 말했다. 두산은 "선진기업 M&A는 연구개발(R&D) 전략"이란 말을 서슴없이 한다. R&D에만 매달렸으면 몇십년 걸렸을 것을 M&A로 단기간에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반대로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사들여 기술이 넘어갔다면 거센 '기술유출' 논란 속에 그 외국 기업은 기술을 노린 '도둑놈'쯤으로 매도당했을 게 뻔하다. 이 모두 일종의 '이중성'이다. 지식경제부가 '산업기술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 개발된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에 M&A될 때 이를 '사전신고'하라는 것이다. 또 기술 유출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정부는 M&A 중지,원상회복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얼핏보면 당연한 얘기같지만 여기에도 '이중성'이 깔려 있다. 선진국을 향해서는 기술이전,기술협력 등을 원하면서 우리의 기술이 경쟁국,특히 중국 등 신흥국으로 유출돼선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세상 일이 결코 일방적일 수만 없고 보면 우리가 이렇게 나왔을 때 그 '득'과 '실'을 냉정히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국인투자를 위축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가만히 있어도 외국인투자가 밀려드는 국가라면 또 모르겠지만,그것도 아닌 처지에 이런 규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국인 투자자의 '입맛'을 싹 가시게 할 수 있다. 특히 '사전신고' 의무화는 여간 성가신 기업규제가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들은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기밀이 사전에 유출될 위험만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선진국에도 유사한 법률이 있다고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우리 경제의 미래 먹을거리로 제시된 신성장동력은 우리 자체의 R&D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선진국과의 기술협력과 선진기업의 M&A가 긴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기술보호주의를 자극하고 나설 경우 누가 더 손해를 볼지는 자명한 일이다.

신흥국 시장 확대에도 마이너스일 수 있다. 신흥국 기업들이 기술을 얻기 위해 한국 기업을 M&A하길 원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기술보호 논리로 이들의 M&A에 제동을 걸기 시작하면,그것이 신흥국 시장 공략에 결코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게다가 지금의 우리 주력산업들은 언젠가 구조조정이 돼야 하는데 그때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면,정부가 기술유출 논란을 자초하거나 발목 잡을 일은 하지 않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기술보호주의로 성공한 국가나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개방'이 더 많은 혁신을 촉발했고, 더 많은 이득을 가져왔다. 기술보호규정을 하나 더 만드느니,차라리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외국 기업,외국 대학,외국 연구소에도 개방하는 것은 어떤가. 단,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얻은 기술인 만큼 이 땅에 투자를 하고,일자리를 만들라는 조건 정도만 붙여서 말이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