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자와 기업을 위한 내일찾기] (4) 금융위기때 사업 부도난 30대 "삶의 끝에서 '내일찾기'로 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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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기극복의 발판
캠코서 빚 상환 연장해주고 일자리까지 추천
"일하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이제 사회에 진 빚 갚아야죠"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대량 해고와 폐업으로 실직자를 양산해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그로부터 11년 뒤 일어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우리 사회에 적지않은 충격을 줬다.
지표상으로 한국 경제는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빚에 눌려 고된 삶을 이어가는 채무불이행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채무불이행자가 신용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 등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위기를 넘어
경기도 수원에 사는 양모씨(46)는 두 번의 경제위기로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동기들에 비해 약 3년 정도 늦게 대학을 졸업한 양씨는 1996년 한 무역회사에 입사했다. 2년 뒤 외환위기가 터지자 반 강제로 사표를 쓰고 나와야 했다. 곧바로 창업을 했지만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남은 건 대출과 마이너스통장,카드빚이었다. 무작정 해외로 도피했다. 2년간 태국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며 살았다. 마음의 빚은 항상 그를 짓눌렀다. 그러다 신용회복위원회를 알게 됐다. 곧바로 귀국해 상담을 받았다. 다행히 채무조정이 받아들여져 6800만원의 빚은 1800여만원으로 줄었다. 담배와 술도 끊고 태국에서 가이드를 하며 정해진 날에 꼬박꼬박 빚을 갚아나갔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또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관광객이 뚝 끊긴 것.수입이 사라졌고 연체는 다시 시작됐다. 양씨는 귀국을 결심했다. 신복위에 재차 채무조정을 요청하고 구직 신청도 등록했다.
죽으란 법은 없었다. 요청이 받아들여져 상환 기간이 7년으로 늘었다. 그리고 5개월 만에 한 의료정보 제공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양씨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며 "앞으로 열심히 일해 신복위와 사회에 진 빚을 갚겠다"고 다짐했다.
◆아내와 어린 두 딸을 위해서라도서울 신정동에 거주하는 정모씨(39)도 양씨처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케이스다. 그는 굴지의 보험회사에서 일하다 온라인게임 유통업체인 D사를 창업했다. PC방 프랜차이즈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주거래은행이었던 K은행은 그동안 이자를 꼬박꼬박 잘 냈는데도 신용등급이 좋지 않다며 대출금을 회수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담당 직원도 회사 규정상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해했다. 집을 경매로 넘기고 폐업한 뒤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청산했지만 그러고도 800만원가량의 빚이 남았다. 이것 때문에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아내와 어린 두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러다 자산관리공사(캠코)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달 채무를 재조정했다. 구직 신청도 등록했다. 다행히 가스용품을 제조 · 판매하는 ㈜3차버너에 취직이 됐다. 정씨는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준 캠코와 회사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가업 포기했지만…서울 시흥동에 살고 있는 이모씨(54)는 1983년부터 종로에서 인쇄소를 운영해 왔다. 남들이 어렵다던 1998년 외환위기 때도 끄떡없이 버텼다. 2003년에는 큰아들이 독립해 또다른 인쇄소를 열었다. 그러던 중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들 부자의 꿈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큰아들의 인쇄소가 부도나 담보로 제공했던 집이 경매 처분됐다. 급기야 이씨의 인쇄소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작년 12월 저축은행과 캐피털 등으로부터 빌린 2300만원이 캠코로 넘어갔다. 지난 2월 원리금의 일부를 감면받고 상환 기간도 3년으로 늘리기로 채무재조정 약정을 맺었다. 구직 신청을 통해 안양에 있는 한 플라스틱 제조업체에 취직도 했다. 이씨는 "20년 가업을 포기했지만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 내일찾기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대한상공회의소 자산관리공사(캠코)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 한국경제신문 등 6개 기관이 함께 신용회복자 취업을 알선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내일찾기'를 통해 취업하려는 신용회복자는 캠코 취업지원센터(1588-1288)나 신복위 취업지원센터(1600-5500)로 문의해 구직 신청을 등록하면 된다. 신용회복자를 채용하고 싶은 기업은 대한상의 홈페이지(www.korcham.net)에 접속해 구인 신청 등록을 클릭해 사업자 번호,모집 직종,채용 인원,연락처 등 몇가지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