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만 더' 끊을 수 없는 도박 유혹…'충동장애' 치료 받아야

도박 중독의 수렁

사회·직업·가정 책임 회피, 타인에 피해주면 '병적 수준'
약물·알코올 남용까지 발전, 심하면 자살에 이르기도
격리 입원·약물치료 병행, 전문가의 상담 받아야

'스타골든벨 1학년 1반','꽃다발' 등 젊은층이 즐겨보는 예닐곱개 인기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예능의 신(神)'으로까지 불리던 방송인 신정환이 돌연 방송 출연을 펑크내고 필리핀으로 잠적한 게 도박중독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는 2005년 11월 도박 혐의로 기소돼 방송출연 정지를 당했다가 탁재훈 등 동료 연예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방송에 복귀했고 올해 7월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에서 1억8000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더욱이 선불로 받은 출연료와 자신의 집까지 저당 또는 압류돼 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도박중독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사회 · 직업 · 가정에서의 자기 책임을 이행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도박에 탐닉하는 일종의 '충동장애'이다. 방화광,절도광(도벽증),간헐적 폭발성 장애(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고 폭언 · 폭력을 일삼으나 곧 후회하는 행동),폭식증,게임중독과 마찬가지로 점진적으로 특정 대상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정신질환이다.

도박행위가 파멸을 무릅쓸 만큼 쾌감을 야기하는 강력한 유혹이기 때문에 도박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다. 우연히 대박을 터뜨린 사람은 승리에 대한 환상에 빠져들고,베팅액을 자꾸 올리고,도박한다는 사실을 숨기며 주위사람에게 무관심해지고 일을 소홀히 한다.

도박빚이 늘면 거짓말,사기,공금횡령,문서위조 등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고 신용과 직장을 잃는 게 다반사다. 자살 충동도 야기하는 것으로 의학계는 보고 있다. 정선경찰서 통계에 따르면 2000년 강원랜드 개장 이후 지난해까지 정선군 관내에서만 37명이 도박을 끊지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거나 빚을 갚지 못해 자살했다. 이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자신과 주위사람에게 피해를 많이 끼치는데도 불구하고 도박을 끊지 못한다면 병적 도박 증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 성인 1~3%가 병적 도박환자로 보고됐다"며 "국내에서도 1~6%의 성인이 도박중독에 빠졌다는 논문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병적 도박자의 70% 이상이 우울증,50%가량이 약물이나 알코올 남용을 보이고 약 15%가 최소 1회 이상 자살을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도박중독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우선 아버지와 어머니의 병적 도박은 각각 아들과 딸에게 이어질 수 있다. 도박자의 부모에게서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 연관성도 있다.

성장환경도 관련이 깊다. 15세 이전에 부모가 사망 · 별거 · 이혼했거나,부모로부터 제대로 훈육을 받지 못했거나 반대로 엄혹한 교육을 받았을 때,부모가 변덕스러운 경우,돈이나 물질에만 높은 가치관을 두거나 저축이나 계획된 지출을 무시하고 낭비하기 좋아하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경우 도박중독자가 많이 나온다. 사춘기에 도박행위를 해본 사람은 병적 도박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남성에게서 이런 성향이 높게 나타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성은 중년에 도박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는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의 이상,도박과 같은 위험한 모험을 즐기거나 반대로 회피하려는 유전자의 존재 여부에 따라 도박중독이 생긴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열정적이고 쾌락을 지향하고 과시하기 좋아하며 돈을 멋대로 쓰는 사람들이 도박중독에 걸리기 쉽다. 조근호 을지병원 정신과 교수는 "과거에는 특정물질을 섭취하는 것만을 중독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특정 행위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것도 중독으로 본다"며 "도박중독은 알코올중독과 마찬가지로 의존성과 금단증상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도박중독은 상담치료가 우선이다. 조 교수는 "도박중독자는 항상 마음만 먹으면 도박을 끊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증세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장기화된다"며 "의사가 순수한 도박중독인지,우울증 · 조증 ·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인해 도박에 빠지는지 가려낸 다음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 그에 맞는 통합적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조(自助)집단에 가입하는 게 도박중독에서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에서 운영되는 익명의 도박중독자들 모임인 GA(Gamblers Anonymous)에선 자신이 도박환자였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동료들이 도박을 더 이상 못하게 압력을 가하고,도박 중독에서 벗어난 동료들을 격려해준다.

중증이면 3개월의 입원 격리치료 후 약물치료,인지행동치료,개인정신치료,가족치료,재무관리상담이 필요하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