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춘화(春畵) 전시회

'중국에서 온 책을 봤더니 남녀가 교합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 여럿 있었다. 진흙으로 만든 조각을 상자 속에 넣고 기계장치로 움직이게 하는 그림도 보였다. ' 박식하기로 소문난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처럼 춘정을 자극하는 그림을 춘화(春畵),조각을 춘의(春意)라 했다. 이규경은 두견석으로 조각하고 자작나무 갑에 넣은 춘의를 직접 보니까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고 전한다.

고산현감을 지낸 학자 박양한(1677~1746)은 '매옹한록'이란 저서에서 명나라 사신이 인조에게 바친 예물 중 상아로 만든 춘의가 있어 승정원으로 보냈다고 소개했다. 보도 듣도 못하던 물건이라 손에 쥐고 감상하는 신하가 있어 조정은 그들의 청로(淸路)를 막았고,인조는 춘의를 부숴버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로 미뤄보면 조선 중기 중국에서 음란 그림과 조각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 같다. 중국에선 이미 기원 전 2세기 한나라 때 병풍에 춘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 귀족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떠돌던 춘화가 민간에 널리 퍼진 시기는 명대 말기다. 상품경제가 발달하면서 향락문화가 함께 고개를 든 것으로 풀이된다. 1642년 간행된 채색목판화집 '원앙비보'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선 에도막부 시대 도시의 발달과 함께 춘화가 민간으로 파고들었다. 화려한 채색 판화 '우키요에(浮世繪)'와 결합하면서 대담한 소재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경향을 보인다.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신유한은 1719년 일본을 다녀온 후 남긴 '해유록'에서 일본 남자들은 품속에 운우도(雲雨圖)를 넣고 다닌다고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 춘화가 유행한 건 18세기 이후다. '운우도첩''건곤일회도첩' 등이 회화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남녀의 합환과 자연의 음양이치를 한 화면 속에 조화롭게 표현하려 한 점이 특징이다.

한 · 중 · 일 3국의 옛 춘화 61건,114점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서울 평창동 화정박물관에서 14일 개막된다. 공식적으로 외설에 대해 엄격한 우리나라에선 이례적 일이다. 감상과 함께 학술연구 대상으로 춘화를 조명하는 전시회라지만 노골적 부분이 많아 관람객을 '19세 이상'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이를 풍속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로 삼게 될지, 일과성 이벤트로 흘려보낼지 궁금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