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공계의 매력

얼마 전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가르치는 교수 친구와 소주 한잔을 하다가 학부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꺼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친구는 해가 갈수록 실력 있는 대학원생들을 보기 힘들어 연구활동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학부에서 공들여 가르쳐 놓은 학생이 의치학전문대학원에 가거나,진로를 바꿀 때면 정말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친구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높이 사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빈잔에 술을 따라주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뿐이었다.

이공계의 위기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나의 학부 초년 시절 은사님과의 술자리가 떠오르곤 한다. 은사님은 이제 막 전공에 입문한 나를 포함한 40명 남짓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모두 미생물을 전공해서 교수나 연구원이 될 필요는 없다. 너희들 중에서 앞으로 기업을 하는 사람도 나와야 하고 변호사,기자도 나오고 정치가도 나왔으면 한다. "

이제 막 도래한 생명공학 시대의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던 우리들은 당시만 해도 그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은사님은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셨던 듯하다. 나와 그 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40여명의 동기들은 교수님 말씀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의 이과적 열정과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공계 학문은 자연현상에 의구심을 갖고 그 의구심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분야로 소신을 갖고 열정을 바쳐야 한다. 내가 좋아서 한 곳에 몰두해야 하는 이공계의 매력은 예술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두 달 전 나는 서점에 갔다가,학부 시절 공부했던 전공서적을 발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책을 샀다. 회사 일로 가끔씩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할 겸 서재에 앉으면 어김없이 그 책에 손이 가게 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책에 몰입하면 머릿속이 가지런히 정리되곤 한다. 아직 내게 '이과쟁이'의 열정과 기본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공계 전공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세상이 자신을 몰라준다고 실망하지 말자.당신들은 소질과 열정으로 선택된 '이과쟁이'이며,아직 우리가 푼 것보다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더 많이 남아있다. 이공계의 위기라는 얘기가 거론되고 있는 요즘이지만,'이과쟁이'로서의 소질과 열정을 살려 노력하다 보면,많은 분야에서 성공적인 결말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생각의 말미에,문득 그야말로 손때 묻은 문고리 같은 우리 회사 이과쟁이 인재들이 떠오른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직원이 있을까마는,창업부터 함께 고생해준 이과쟁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 더 기운 내서,앞으로 이공계 위기란 소리는 없어지게 하자.파이팅!"

정현호 < 메디톡스 대표 jhh@medytox.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