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국부론에서 읽는 신한은행 사태

'소유없는 경영' 우려했던 스미스
마름들의 전횡이 자본주의 맹점
"주식회사는 고용된 이사들에 의해 경영되는데 그들은 대체로 태만하고 낭비적"이라고 말했던 사람은 애덤 스미스다. 고용된 이사라고 하면 요새 말로 최고경영자(CEO)요 전문경영인이다. 한국 재벌의 오너 체제를 비판하며 소유로부터 분리된 전문경영이라는 신화를 기대해왔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런 언명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에서 연이어 터지고 있는 별들의 전쟁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돌아가는 사태를 보자면 '전문 경영인들은 태만하고 낭비적'이라는 말 뒤에 '권력투쟁에는 더욱 소질이 있다'는 구절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신한은행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예민한 기자의 상상력으로도 알기 어렵다. '못미더운 후계자'와 '장기집권 노욕(老慾)'의 충돌 문제는 실로 외부인이 판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3연임 이후에는 반드시 문제가 터진다'는 경영계의 속설도 나왔던 모양이다. 이미 옛날부터 주인보다 마름이 무섭다는 말이 전해오지 않았나. 놀랍게도 자본주의 수호자 애덤 스미스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전문 경영인들은 부자의 집사처럼 행세한다"는 국부론의 언급은 그래서 오늘날에도 통렬하게 들린다. 자장면 가게조차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엉망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대 경제학의 용어로는 '주인 대리인' 문제이며 이는 대부분 정보비대칭(asymmetrical information)이라는 현학적인 말로 설명되는 그런 전형적인 사건이다.

신한은행 이사회를 앞두고 난처해하고 있는 사외이사들의 표정도 그런 처지를 잘 보여 준다. 이들은 "아직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쌍방으로부터 실체적 진실을 알 수나 있다는 것인지.지난 주말 당사자들과 사외이사들은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빌라도처럼 손을 씻을 수도 없다. 사외이사가 경영자의 고무도장이 되고 만 것은 이 제도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주는 회사 내에 파벌이 없는 한 배당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라는 게 스미스의 냉소지만 우려했던 바로 그 파벌의 문제가 신한은행에서는 고발사태로까지 번져 기어이 공권력이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신한은행 사태를 지켜보면서 다시 꺼내든 국부론은 차라리 오늘의 사태에 대한 예언서의 한 페이지다. 정곡을 찌르고 있어 역시 고전이라며 무릎을 치게 된다. 국부론은 우리가 잘 아는 남해회사 사건과 미시시피 거품 사건이 터진 1720년으로부터 60년이 지난 시기에 저술된 책이다. 사실상 주식회사의 설립을 금지하는 소위 거품 방지법이 아직도 지배하던 시절이다. 거품과 탐욕을 구조화하는 주식회사 제도에 대한 예리한 공격이 그의 국부론을 장식한 것은 이런 시대 배경에서다. 남해회사와 미시시피 거품 사건을 스미스는 금융의 문제가 아닌 소유경영의 분리라는 차원에서 봤던 것이다. 거대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유경영의 분리는 이렇게 처음부터 CEO들의 탐욕을 조장하고 방종케 하는 모순을 갖는다. 당연히 그 역사는 수세기에 걸친 것이다. 밤의 황제라고도 불렸던 록펠러의 시대를 거치면서 자본가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이어졌고 이것이 벌(Berle)과 민즈(Means)의 1932년 연구에서 막을 올린 것이 소위 지배구조론의 출발이다. 작금의 세계금융위기도 알고보면 전문 경영자의 문제에서 기원한 것이다. 주인 없는 회사에서 전권을 쥔 경영자들이 회사 내에 참호를 구축하거나 파벌에 휘말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엔론이 그랬고 GM도 다르지 않았다. 주인이 없으면 마름과 집사들의 난투극은 구조화한다. 신한은행 분쟁이 여의도 활극보다 재미있다. 오늘 이사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어떤 결론이건 은행의 전도에는 잔뜩 먹구름이다.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