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개혁 출발은 학생 평가…성적따라 수업료 달리해야"

서남표 KAIST 총장-펄 에릭슨 스웨덴 룬드大 총장 대담

서남표 총장
'고인 물' 교수사회 경쟁체제 도입…외국인 비중 20% 이상으로 확대

에릭슨 총장
필기시험만으로 인재선발 어려워…인터뷰 통한 인성평가 중점 둬야
"글로벌 경쟁 시대를 맞아 대학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학생 · 교수 · 직원 등 모든 분야에 걸친 개혁이 절실하다. "(서남표 KAIST 총장)

"스웨덴 대학들에도 최근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KAIST가 추진 중인 대학 개혁 방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펄 에릭슨 스웨덴 룬드대 총장)지난 6일 오후 대전 구성동의 KAIST 본관 2층 총장실.서남표 KAIST 총장과 '유럽의 MIT'(미국 매사추세츠공대)로 불리는 스웨덴 룬드대의 펄 에릭슨 총장이 마주 앉았다. 두 나라를 대표하는 이공계 대학 총장들은 이날 대학 개혁 방향을 놓고 한 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다. 두 사람은 대학에도 기업의 경영마인드를 도입해 전 분야에 걸쳐 과감한 개방과 개혁,경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담은 학생 평가 방식에 대한 얘기로 시작됐다. 서 총장이 먼저 말문을 텄다. 그는 "학생이 시험 등 각종 평가를 통해 받은 성적에 따라 학교에 내는 수업료를 차등해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수업료 차등이 학생들의 학업 열의를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서 총장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서 총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에릭슨 총장은 학생 선발 제도부터 변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필기 시험 성적만 갖고 일률적으로 학생을 뽑는 현재의 선발 방식으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선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적보다는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지원자의 자질과 잠재능력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서 총장이 동의했다. 그는 "대학 입시 제도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며 "고등학교 내신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필기시험 대신 인터뷰를 통한 인성평가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교수 쪽으로 화제를 옮겨갔다. 교수 사회에 대한 개혁 방향에 대해 의견이 일치했다. 서 총장은 "교수진에 대해서도 철저한 성과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교수 평가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에릭슨 총장은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대학도 이제 글로벌 경쟁을 하고 있고 전 세계가 인재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룬드대는 교수들 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초청 교수로 섭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 총장은 "교수진이 '고인 물'처럼 정체돼서는 대학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며 "KAIST도 우수 교수 채용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대학 내 각 학부 · 전공 간 경쟁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서 총장은 "KAIST 소속 각 학부가 각자 원하는 수 만큼 교수를 새로 채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학부 간 선의의 경쟁이 보다 우수한 교수진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말했다. 에릭슨 총장도 "교수들 입장에서는 KAIST의 개혁 방향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지만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두 사람은 대학의 글로벌화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깊은 대화를 나눴다. 서 총장은 "더욱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 KAIST 교수진도 20% 이상을 외국인으로 채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의 경우 대학 캠퍼스 밖으로 나가면 영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이 문제"라며 "학생들을 위한 '영어 클리닉'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릭슨 총장은 "룬드대도 KAIST가 진행 중인 개혁을 모델로 대학 발전 계획을 수립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룬드대는 1666년 설립돼 34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카롤린스카 연구소,웁살라대와 함께 스웨덴 3대 이공계 고등교육기관 중 한 곳이며,각종 대학 평가에서 세계 6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에릭슨 총장은 스웨덴 과학계의 '거물'로 스웨덴 기술혁신청 초대 청장 등을 지냈으며 지난해부터 룬드대를 이끌고 있다.

그는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국제교류재단은 해외 유력 인사들을 데려와 한국을 알리는 등 '친한' 인맥 쌓기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대전=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