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日 지배하는 '사무라이 정신'…무조건적 충성의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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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 스티븐 턴불 지음 | 남정우 옮김 | 플래닛미디어 | 304쪽 | 1만9800원1970년대 유럽 신문엔 중세 투구를 쓰고 일본도를 허리에 찬 사무라이가 혼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을 질주하는 만화가 종종 실리곤 했다. '일본주식회사' 혹은 '이코노믹 애니멀'의 단골 모델이 사무라이였다. 그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언제나 흥행가도를 달렸고 한 · 일전을 앞둔 일본팀 감독은 늘 사무라이식 정신무장을 강조한다. 왜 이토록 사무라이인가.
일본 근대 최고의 지식인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 즉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이고 정체성의 뿌리"라며 일본 저변에 깔린 의식을 들춰냈다. 잊혀질 뻔한 사무라이 정신이 군국주의 부활과 함께 되살아난 것이다. 이 책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의 기원과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의 미스터리를 심도있게 분석했다. '사무라이' 하면 무시무시한 칼잡이가 떠오르지만 그들은 원래 영주인 다이묘가 다스리는 지역 안에서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엘리트 계층이었다.
'시중드는 자'라는 뜻을 지닌 이들이 처음 등장한 건 10세기 무렵.사무라이에게 무례를 범하면 언제든지 칼로 목을 쳐도 된다는 '키리스테고멘' 권한이 있었던 만큼 규범도 엄격했다. 그 엄격함 속에는 주군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것 등이 포함돼 있었다. 명예를 더럽힌다는 것은 곧 할복을 통한 죽음을 의미했다.
재미있는 것은 최초의 사무라이는 왕족이었고,기마궁수였으며,그들에게도 종종 하극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사도의 준칙이 조선 선비의 규범과 다르지 않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사무라이 정신이 오늘날 너무 미화되고 있다는 세간의 얘기가 많지만 저자는 일본 전문가답게 실체적 접근을 통해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알기 쉽게 풀어헤친다. "목표 달성을 위해 내 목숨을 바쳐 달려나간다. 하늘이 앞을 막으면 하늘을 벨 것이고,신이 앞을 막는다면 신마저도 벨 것이다. " 전설적인 검술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결의는 비장하지만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살아있는 주변국 일본의 정신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오싹하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