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술병 디자인 획일화하는 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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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병 디자인을 바꾸는 건 매우 어려웠다. 세제 때문이다. "(하이트맥주 관계자)
하이트맥주는 최근 '드라이피니시 d'란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병 모양을 완전히 바꿨다. 기존의 천편일률적 디자인에서 벗어나 병은 슬림하게,병목은 두껍게 만들어 인기다. 스웨덴의 보드카 '앱솔루트'가 투명한 병으로 유명해진 것처럼 병 디자인은 주류 마케팅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맥주병은 몇 십년째 똑같았다. 멋진 병에 담긴 수입맥주가 시장을 잠식했지만,맥주회사들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원인은 종가세(從價稅) 구조의 세금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무당국이 주세(맥주 72%)를 매길 때 '술'에 매기는 게 아니라 술과 술병,인건비까지 포함한 '원가'를 기준으로 징수하기 때문에 술병을 바꿔 원가가 조금만 높아져도 세금은 크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맥주 한 병의 원가가 480원이라면 술 값은 약 100원이고 병 값 150원(신병 기준),병마개 12원90전 등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구조인데,주세는 '배+배꼽'을 더한 값에 대해 부과한다. 그 결과 주세가 많이 거둬질 뿐 아니라 부수적으로 '술병의 획일화' 현상마저 가져온 것이다.
맥주에 대한 세금은 주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주세의 30%만큼 교육세가 별도로 더해지고 최종 판매가의 10%가 부가가치세로 부과되는 점을 감안할 때,술 병 하나 바꾸면 세금은 엄청나게 오르게 된다. 라벨이나 병마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술의 양에 따라 주세(종량세 · 從量稅)를 매기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다. 물론 기획재정부나 국세청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러나 세무당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술 값만을 계산해 세금을 매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매일 바뀌는 주정 원료 값과 물 값 등을 따져야 하고,주정을 수입할 때는 환율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금이나 규제는 비효율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 정면에서 보이는 창문 수와 바닥면적에 따라 세금을 매기다보니 밑이 좁고 뾰족해진 네덜란드의 전통주택이 대표적이다. 이번 정부 들어 규제개혁의 바람이 불었지만 여전히 규제는 많다. 불합리한 제도가 개선돼 주류산업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김현석 생활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
하이트맥주는 최근 '드라이피니시 d'란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병 모양을 완전히 바꿨다. 기존의 천편일률적 디자인에서 벗어나 병은 슬림하게,병목은 두껍게 만들어 인기다. 스웨덴의 보드카 '앱솔루트'가 투명한 병으로 유명해진 것처럼 병 디자인은 주류 마케팅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맥주병은 몇 십년째 똑같았다. 멋진 병에 담긴 수입맥주가 시장을 잠식했지만,맥주회사들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원인은 종가세(從價稅) 구조의 세금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무당국이 주세(맥주 72%)를 매길 때 '술'에 매기는 게 아니라 술과 술병,인건비까지 포함한 '원가'를 기준으로 징수하기 때문에 술병을 바꿔 원가가 조금만 높아져도 세금은 크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맥주 한 병의 원가가 480원이라면 술 값은 약 100원이고 병 값 150원(신병 기준),병마개 12원90전 등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구조인데,주세는 '배+배꼽'을 더한 값에 대해 부과한다. 그 결과 주세가 많이 거둬질 뿐 아니라 부수적으로 '술병의 획일화' 현상마저 가져온 것이다.
맥주에 대한 세금은 주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주세의 30%만큼 교육세가 별도로 더해지고 최종 판매가의 10%가 부가가치세로 부과되는 점을 감안할 때,술 병 하나 바꾸면 세금은 엄청나게 오르게 된다. 라벨이나 병마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술의 양에 따라 주세(종량세 · 從量稅)를 매기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다. 물론 기획재정부나 국세청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러나 세무당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술 값만을 계산해 세금을 매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매일 바뀌는 주정 원료 값과 물 값 등을 따져야 하고,주정을 수입할 때는 환율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금이나 규제는 비효율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 정면에서 보이는 창문 수와 바닥면적에 따라 세금을 매기다보니 밑이 좁고 뾰족해진 네덜란드의 전통주택이 대표적이다. 이번 정부 들어 규제개혁의 바람이 불었지만 여전히 규제는 많다. 불합리한 제도가 개선돼 주류산업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김현석 생활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