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업들 "선거광고 안하겠다"

대법원 정치광고 허용 불구
'소비자 눈밖에 날라' 몸조심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선거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월가의 주요 은행들은 물론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지난 1월 미 대법원은 기업들의 선거광고 제한 족쇄를 푸는 판결을 내렸지만 기업들은 선거광고로 자칫 소비자들 눈밖에 날까 우려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신 협회나 유관단체를 통해 자금을 대는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은행 · IT업계 "선거광고 안할 것"JP모건은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중간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선거광고를 집행하지 않겠다"고 게시했다고 광고 · 마케팅전문지 애드버타이징에이지가 20일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민주당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빌 데 블라시오 뉴욕시 공익옹호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선거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곳은 JP모건뿐만이 아니다. 골드만삭스 등 월가의 주요 은행과 마이크로소프트(MS),IBM,델 등 IT 기업들도 최근 동참했다. JP모건 관계자는 그러나 "우리 회사의 정치적 방향이 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의회에 대한 로비는 계속할 것이며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기금을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의원이 소속된 위원회에 주는 방식으로 기부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설명했다.

이들 회사가 선거광고를 중단키로 한 것은 공개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밝혔다가 소비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 타깃은 최근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동성 결혼 반대를 외쳤던 톰 엠마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단체에 정치자금 15만달러를 기부했다가 동성애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고 공개 사과를 했다. 블라시오 공익옹호관은 "기업이 선거 광고를 내는 것은 정치적 이념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며 "주주와 소비자들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회사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기업 선거광고 허용"

미 대법원은 올 1월 기업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 또는 비난하기 위한 선거광고에 돈을 쓰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조항이 헌법에 규정된 '언론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1947년 제정된 이 법은 선거 이슈에 대해 찬반 의견을 제시하는 기업 광고만 허용했으며 특정 후보를 거론하며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선거광고는 규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S나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대형 상장사들은 투자자와 소비자의 눈치를 보느라 선거광고 비용을 대폭 늘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대신 산업별 협회나 유관단체를 통해 선거자금을 지출하는 '우회 경로'를 택하는 사례가 크게 늘면서 이번 중간선거 자금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상공회의소는 올해 중간선거에 7500만달러를 모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전미의사협회,미국제약연구협회 등은 상반기에 각각 1000만달러 이상의 로비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USA투데이는 지난 6월까지 상 · 하원 의원 후보들이 모은 선거자금이 공화당과 민주당을 합쳐 이미 12억달러를 넘었다고 21일 보도했다. 2006년 중간선거 당시 선거를 약 6주 앞둔 시점의 모금액(약 8억8600만달러)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