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케인시안의 부활…'골디락스 증시' 도래하나

재정적자 축소 논쟁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 들어 일부 경기지표가 부진하게 나오자 각국이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경기부양을 주도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오바마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재원을,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중장기적으론 신성장 동력 분야 등에 집중 투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케인스 이론이 태동했던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정부의 정책과 유사해 '오바마-케인시안 정책'이라고도 부른다. 재신임에 성공한 일본 간 나오토 정부도 '간시안' 정책을 추진할 태세다. 부유세 등으로 마련한 재원을 부양효과가 큰 곳에 집중 투입해 디플레 우려까지 제기되는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도다. 증세한 만큼 지출하면 같은 규모로 부양효과가 있다는 케인스 이론의 균형재정승수가 1이라는 점에 바탕을 둔 경기대책이다.

심지어는 재정위기 우려가 재차 불거지는 유럽도 독일 등 유로랜드 핵심국을 중심으로 재정적자 축소보다 경기부양에 무게를 두는 움직임이다. 한국의 4대강 살리기도 명시적으로 경기부양 의도가 크진 않지만 국가 개입을 공식 인정하고 재정지출을 주된 수단으로 삼는 케인시안의 혼합경제 정책에 속한다.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각국이 2차 대책으로 케인시안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위기극복 단계와 깊은 연관이 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 1차 대책에선 유동성 위기극복이 우선인 만큼 한꺼번에 3~4단계씩 기준금리를 내리는 '빅 스텝' 금리인하와 유동성을 거의 무제한으로 푸는 '양적완화' 등 통화정책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평가가 있긴 하지만 1차 대책이 주효해 유동성 위기를 예상보다 빨리 극복하고 이제는 침체된 실물경기를 회복시켜야 하는 단계다. 기준금리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시장금리가 너무 낮아 '통화정책의 무력화'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부진(혹은 침체)한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재정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중요한 것은 효과다. 적자축소론자들은 국채 발행을 통해 공공지출을 늘리면 국채 소화과정에서 금리가 상승해 민간소비가 감소하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배로-리카도의 동등이론에 따르면 재정지출을 줄이면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는 '구인효과(crowding-in effect)'가 발생해 경기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밀과 민스키 같은 경기부양론자들은 지금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는 정책당국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국채 같은 안전자산에 들어가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때는 오히려 국채 공급을 늘려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경향을 완화시켜주면 돈이 실물경제에 유입돼 경기회복에 도움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역사적으로 재정지출승수는 1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2차 대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 경제자문위원회(CEA)도 1.6으로 추정한다. 재정적자 축소논쟁 속에 각국이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경기부양론자들도 종전과 달리 이번에는 위험이 높다는 데 동의한다. 1980년대 중반 이전 회복기에는 각국 경제성장률이 2~4%포인트 높아진 만큼 곧바로 고용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지표경기가 살아나면 체감경기까지 개선돼 재정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고 경기가 회복되자 재정적자가 축소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양책으로 성장률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고용이 늘지 않아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심해지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때 높아진 성장률만 감안해 금리인상과 같은 출구전략(혹은 긴축정책)을 조기에 추진하면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 반대로 체감경기를 개선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재정적자 누적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바이플레이션(bi-flation)' 문제로 연구가 더 필요한 과제다. 2차 대책이 효과가 있다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는 앞으로 좋은 흐름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1차 대책 때 저가 메리트(한국은 환차익까지 포함)에 따른 체리피킹 기대가 높은 가운데 유동성이 공급돼 주가가 의외로 많이 올랐으나, 2차 대책 때는 효과가 있더라도 경기가 회복되는 만큼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상승폭이 작아질 수 있다.

최근 월가에서 앞으로 주가가 오르더라도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국면'이 올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기간 내 후유증 없이 극복되는 유동성 위기와 달리 이번 경기회복은 오랜 시간을 요하고 위험도 높은 만큼 기대 수준을 낮춰 긴 호흡으로 주식 투자에 임해야 할 때다.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