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原電강국 코리아] (1) 핀란드 "한국 원전 시공능력 존경"…英 "하청업체로 써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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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옹성 유럽, 문을 열다#핀란드의 민간 전력회사 TVO는 세계 최대 원자력발전소 시공업체인 프랑스 아레바와 수천억원대의 법정 분쟁을 벌이고 있다. TVO의 세 번째 원전인 OL 3호기 공사를 맡은 아레바가 당초 내년 말로 잡혀 있는 공기를 2년이나 어겨 2013년이 돼서야 완공하겠다고 통보하자 즉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UAE 수주 이후 대접 달라져…폴란드도 한국형 원전 검토
프랑스 독점시장에 균열
#2007년 말 TVO의 고위 임원들이 서울 삼성동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방문했다. 한수원과 거래관계가 전혀 없는 TVO 임원들은 자신들의 뜻밖의 방문에 놀란 한수원 관계자들에게 "한국형 원전의 홍보 팸플릿을 보고 왔다"고 말했다. 유럽 진출을 꿈으로만 생각해온 한수원으로서는 흥분할 만한 일이었다. TVO는 2008년 4월 "한국형 원자로를 핀란드 기준에 맞출 수 있겠느냐"며 협력 의사를 타진한 뒤 올초엔 네 번째 원전인 OL 4호기의 후보 모델 5개 가운데 한국형을 포함시켰다고 알려왔다. 국내 원전 업체들에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유럽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 핀란드를 비롯 영국,폴란드 등도 한국을 원전 산업의 '메이저리거'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영국 굴지의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한국전력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프로젝트의 하청회사로 참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정도다. 유럽 원전 시장은 그동안 프랑스 아레바가 독식해 왔으나,UAE 원전 수주 이후 한국 업체들을 바라보는 유럽 원전 업계의 시각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핀란드, 프랑스 공사 지연에 실망
TVO가 선정한 후보 모델은 미국과 일본 연합군인 도시바 · 웨스팅하우스의 ABWR,GE · 히타치의 ESBDR,미쓰비시의 APWP,아레바의 EPR1600,한국전력의 APR1400 등 5개다. TVO는 이 중 2개를 연말까지 최종 후보군(쇼트 리스트)으로 압축할 예정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유럽 원전 시장에 한국형이 후보군에 포함된 것 자체가 사상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올리베카 루흐타 TVO OL4 책임자는 "현재로선 5개 후보 가운데 핀란드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을 갖춘 곳이 없다"며 "거꾸로 말하면 모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UAE 사례 이후 원전 수출이 무한 경쟁으로 돌입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전력회사인 EDF의 프랑수아 루슬리 명예회장은 지난 7월 말 정부 보고서에서 "원전 수출의 기존 구도가 붕괴돼 각국이 해외 입찰을 통해 원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추세"라며 사례로 UAE,핀란드,중국을 꼽았다.
핀란드 OL3 공사 지연은 프랑스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아레바는 공사 지연으로 올 2분기에만 약 4억유로(약 6178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추락은 한국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리쿠 후투넨 핀란드 고용경제부 에너지담당 국장은 "한국은 UAE에서 원전 운영까지 책임질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고,특히 풍부한 시공 경험을 통해 경쟁력이 충분하다"며 "이에 반해 아레바의 OL3호기 공사 지연은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시공 현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UAE 원전 공사 진행 세계가 주목
폴란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2022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첫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폴란드 정부는 지난달 한국과 원전 건설을 위한 정부 간 협력에 서명했다. 정부 간 양해각서(MOU)는 작년 11월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다. 원전 건설을 책임지고 있는 PGE에너지의 마르친 치에플린스키 대표는 "2013년 말까지 파트너를 선정할 계획"이라며 "한국이 UAE 원전 건설을 어떻게 수행할지를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폴란드의 유럽연합(EU) 가입 등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가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최근 폴란드 정부가 가격과 적기 시공을 중요시하고 있는 점을 들어 한국의 수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PGE가 추정한 건설 비용은 약 52억유로(약 8조원)규모다. 영국 굴지의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한국에 공조 요청을 하고 있는 것도 달라진 위상을 반영한다. 키스 파커 영국원자력협회(NIA) 대표는 "양국 간 교류를 통해 제3국 원전 사업에 공동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헬싱키/바르샤바/런던=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