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原電강국 코리아] (2) 태국 원전세미나 日ㆍ佛 제쳐놓고…한국만 콕 집어 "기술 설명해달라"

(2) 동남아, 한국을 부른다

태국ㆍ베트남ㆍ말레이시아 등 2030년까지 20기 건설 추진
시공능력ㆍ기술ㆍ운영경험 外 국제 역학관계도 수주에 영향

지난 17일 태국 에너지부 주최 원자력발전 세미나가 열린 방콕 래디슨호텔.노쿤 시티퐁 에너지부 차관보의 모두발언이 끝나자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일본 등의 대사관 직원들이 자국 대사의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한결같이 태국 원전 건설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다.

잠시 후 태국 에너지부의 한 직원이 "까올리(한국)"라고 말하며 손짓을 보내자 정해문 주태국 대사가 연단에 올랐다. 정 대사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기술과 운영 경험에 대해 설명하고,태국 정부의 원전 건설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경쟁국인 한국 대사의 발언을 듣는 다른 나라 대사관 직원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원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그간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을 원전 운영 노하우를 지닌 나라로만 여겼다. 그들보다 앞서 원전을 도입해 운영한 만큼 그 경험을 배우자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공사를 수주한 뒤로는 한국을 원전 건설의 유력한 사업자 후보군에 올려놓고 있다.

◆전력 수요 급증…너도나도 원전

동남아 국가들은 2030년까지 줄잡아 20개의 원전을 지을 계획이다. 베트남은 닝 투안 1호기를 2014년 착공해 2020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닝 투안 1호기는 동남아 국가에 건설되는 최초의 원전이다. 베트남은 닝 투안 1호기를 포함해 2030년까지 13기의 원전을 건설,전체 전력 생산의 10%를 원자력으로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태국은 2028년까지 1000㎿급 원전 5기를 건설하기로 하고,그중 첫 번째 원전을 2020년부터 가동하기 위해 현재 사업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2021년 초 가동을 목표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필리핀은 2025년 600㎿급 원전을 가동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고 싱가포르는 원자력을 전력 생산에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정부 내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이 지역 국가들은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라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다토 스리 칼립 말레이시아 TNB 사장은 "전력 소비량이 매년 6~8% 증가할 것"이라며 "천연가스와 석탄 등 기존 에너지원만으로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국은 올 들어 말레이시아 라오스 등 이웃 나라에서 전기를 공급받아야 할 정도로 전력난이 심각하다. 나티 탑마니 태국 에너지부 정책전략국장은 "미래 전력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한국서 원전 도입 계획 설명원전 건설 계획이 본격화하면서 사업 수주를 위한 국가 및 업체 간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프랑스의 아레바,일본의 히타치 등 주요 원전 설비업체 관계자들이 수시로 국영 전력회사를 방문하고 한국을 비롯한 원전 수출국 대사들은 정부 부처 관계자들을 만나 원전 추진 상황을 전해 듣고 자국의 원전 기술을 홍보하는 것이 주요 업무가 됐다.

한국의 수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말레이시아다. 한국전력은 지난 6월 말레이시아 원전 건설을 위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보고서를 제출했다. 한전 관계자는 "말레이시아는 부지 선정을 위한 사전조사도 한국 업체에 맡기기로 했다"며 "사전조사를 진행하면 입찰할 때도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원전 건설 계획을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행사도 예정돼 있다. 말레이시아는 29일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지식경제부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한 · 말레이시아 원자력에너지 포럼'에 에너지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대규모 방문단을 파견한다. 태국에서도 한국은 주요 수주 후보로 올라 있다. 나티 국장은 "한국은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원전 이외의 다양한 에너지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필리핀에서는 바탄 원자력발전소를 재건하는 과정에 한전 등 한국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621㎿ 규모의 바탄 원전은 1976년에 착공했으나 환경단체의 반발로 1980년대 초 공사가 중단된 시설이다. 한전은 재건 타당성 조사를 통해 10억달러 정도를 투입하면 1년여의 공사를 거쳐 이 원전을 가동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해 필리핀 정부에 제출했다.

◆역학관계 고려한 +α필수

시공 능력과 기술 외에 국제 역학관계도 동남아 원전 수주의 주요 변수다. 베트남 닝 투안 1호기 공사를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이 가져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초 이 공사는 도시바 미쓰비시 히타치 등으로 구성한 일본 컨소시엄에 넘어갈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러시아가 최신형 전투기와 잠수함을 베트남에 판매하기로 하면서 전세가 뒤집혔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이 원전 사업을 러시아에 넘겨주면서 러시아제 신형 무기를 도입,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차기 베트남 원전 수주전에는 미국과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평화헌법상 무기를 수출할 수 없지만 미국과 연합전선을 구축하면 무기 지원 등의 플러스 알파(+α)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계산이다. 이런 협력은 동남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으려는 미국의 이해관계와도 들어맞는다. 정 대사는 "원전 건설 및 운영 기술이 중요하지만 플러스 알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입찰이 본격화되면 정부 차원에서 패키지로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콕/쿠알라룸푸르=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