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부자들은 '정서적 소외계층' 행복해지는 연습 필요하죠"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
요즘 들어 부유층의 정신건강이 나날이 나빠지고 있는 추세다. 부자들에게는 경기불안에 따른 부동산 자산 가치의 하락,보유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한 부적응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는 주로 서울 강남 부유층이나 중견기업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매주 70여명에게 우울증 불안증 스트레스증후군 등에 대한 정신과 상담을 한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윤 교수를 국내서 부자환자를 가장 많이 만난 의사라고 공공연히 인정할 정도다. 윤 교수는 부자나 성공한 사람들의 정신적 고민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없고,골프나 음주 외엔 이렇다 할 취미가 없으며 재산이 줄까 늘 좌불안석이고,젊어서부터 늘 승승장구한 탓에 어쩌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서민들이 '사회 · 경제적 소외계층'이라면 부자는 '정서적 소외계층'이라고 빗대어 말할 수 있다.

경제 ·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20,30대부터 부의 축적과 입신을 위해 매진해왔기 때문에 친구 사귈 시간이 없고, 있는 친구들도 하나둘씩 떠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는 자신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에 자기보다 경제적 ·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친구를 만나는 게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라는 것.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교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성공한 사람끼리도 서로 위신 때문에 터놓고 말하기 어렵다.

고민의 주제 또한 부동산 침체로 인한 자산가치 감소,과도한 세금,사업 부진,채권 · 채무 관계,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시장상황의 급변 등 다양해서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 일부 부자들은 가족에 대해서도 피해의식을 느낀다. '돈 벌어 오는 기계'쯤으로 여기는 가족에 대한 반감을 갖는 것이다. 부자들은 늘 승승장구해 왔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자신의 기억력,판단력,체력 등이 떨어진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이 배제되거나 재산상 손실을 입게 되면 과잉 또는 부적절하게 대응하는 정신적 취약성을 보인다. 윤 교수는 "여전히'영원한 현역'으로 생각하는 고령의 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거래처 접대를 부하직원에 맡기지 않고 직접 챙기기도 한다"며 "나이를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일 때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찍 성공한 40대 초중반의 사업가들은 고급 술집에 가는 것도,골프를 치는 것도 딱히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수십억원짜리 계약을 따내도 무감해진다는 것.이는 기부나 자원봉사를 통한 사회적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윤 교수는 지적했다.

정신적 문제를 앓는 부자나 CEO는 상당수가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 윤 교수는 "이들은 수면시간과 수면의 질,기억력,근력이 떨어지면서 짜증을 잘 내고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을 경우 스트레스로 인해 약을 먹어도 혈압이나 혈당이 잡히지 않는 현상을 보인다"며 "이땐 우울증이나 정신문제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는 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소득수준이나 학력 성별 등이 행복에 미치는 비중은 15% 정도에 불과하다"며 "상황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느냐,부정적으로 임하느냐는 유전적인 영향이 크지만 성장환경,즉 부모의 배려와 각자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가 내놓은 행복해지는 방법은 다섯 가지다. 첫째,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고령일수록 남자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남자는 업무로 맺어진 공적 관계가 대부분으로 은퇴 후 상실감이 큰 반면 여성은 친구나 이웃 등 손익을 따지지 않는 1차적 관계가 많기 때문이다. 친구를 사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기왕이면 선배,동년배,후배 등 3차원적인 인간관계를 꾸리되 고령화 사회를 감안해 자기보다 10~20년 어린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게 현명하다.

둘째,취미를 다양하게 가져야 한다. 통상 부자들의 80%는 별다른 취미가 없다고 대답한다.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부자들 중 수상스키나 승마 같은 활동적인 레저를 하는 사람은 드물고 대개는 음주나 골프에 치중한다. 골프의 경우 운동량도 적고 내기를 하다보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가중되기 때문에 보다 동적인 취미를 갖는 게 좋다. 셋째,남에게 순서 양보하기 등 친절한 행동을 실천한다. 넷째는 행복일기를 쓰면서 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끝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