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의 관료화…아이폰에 맞설 기회 놓쳤다"

NYT '퇴직 사원들 증언' 보도
"터치폰·앱스토어 아이디어 비용 많이 든다며 번번이 퇴짜"
노키아는 왜 '아이폰 킬러'를 내놓지 않을까? 안 내는 걸까? 못 내는 걸까? 아이폰 발매 3년이 넘도록 노키아가 '아이폰 킬러'를 내놓지 않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최고경영자(CEO)인 올리페카 칼라스부오가 물러났고 휴대폰 사업 책임자도 사임했다. 최신 운영체제(OS) '심비안3'를 탑재한 야심작 'N8'이 내달 나온다지만 너무 늦었다.

뉴욕타임스는 26일 '관료화가 노키아의 혁신을 막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노키아 퇴직사원들을 면담해 노키아의 문제점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들의 입에서는 "소련식 관료주의"란 말도 나왔고 "경쟁사보다 무서운 건 견고한 관료조직이었다"는 말도 나왔다. 성공에 도취해 혁신을 외면했고'아이폰 킬러'를 내놓지 못했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애리 해커레이넨이라는 퇴직사원은 2004년에 아이폰처럼 손가락 터치로 작동하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폰 시제품을 개발해 경영진 앞에서 시연했다고 말했다. 개발자들은'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생산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애플 앱스토어와 비슷한 온라인 애플리케이션 스토어 아이디어도 내놓았지만 무산됐다.

2001년부터 9년 동안 심비안 유저인터페이스(UI · 사용자환경) 디자인을 개발했던 주해니 리스쿠는 심비안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500가지를 제안했지만 단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리스쿠는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비용이 많이 든다느니,리스크가 크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디자인 승인 절차가 "소련식 관료주의 같았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노키아 측 해명도 실려 있다. 노키아 대변인은 "특허가 1만1000건이나 되고 지금도 매년 1000건씩 등록한다"면서 "잘못한 것도 있고 혁신 기회를 놓친 적도 있겠지만 어느 기업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대해 기업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기사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고,노키아가 건재한 만큼 경계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중소기업 임원인 H씨는 "연초에 노키아가 기지국 장비를 한국에서 구매하겠다고 해 협상을 했는데 협상장에서 자기들끼리 언성을 높여 깜짝 놀랐다"며 "저러다가 휘청거릴 거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퇴직사원 중에는 전 직장에 대해 반감을 품는 사람도 있다"며 "뉴욕타임스가 노키아의 약점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노키아가 적자를 낸 것이 아니고 아직도 세계 최대 휴대폰 메이커,세계 최대 스마트폰 메이커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노키아는 아직도 애플의 두 배가 넘는 연간 70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한다. 문제는 아이폰 같은 하이엔드 제품이 아니라 마진이 작은 로엔드 제품이라는 점이다. 심비안3를 탑재한 신제품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 사업을 담당했던 스티븐 엘롭(46)을 CEO로 영입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엘롭은 21일 취임 후 임직원과 부품 공급업체,이동통신사 관계자 등을 면담하고 있다. 엘롭이 노키아 조직을 어떻게 혁신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