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순신의 리더십

지난 여름,가족들과 함께 남해안 한산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29년 전 해군 장교 시절에 비를 흠뻑 맞으면서 참배를 왔던 곳이라 더욱 감회가 깊었다. 통영 바로 앞인 이 섬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의 지휘본부로 삼았던 곳이다. 이곳에 오자 새삼 세계 해전 사상 유례없는 23전 전승을 기록한 충무공 무패의 근본 비결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됐다.

흔히들 성웅,불멸,해신 등 초인적 측면을 말하거나 옥사에서 풀려나자마자 13척의 병선으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물리친 명량해전을 내세워 탁월한 군사전략가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적군의 압도적인 전력 앞에서 병사들에게 외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는 말은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더 뚜렷한 필승 비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지휘본부건물인 제승당(制勝堂) 앞을 지나면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승리를 제어하는 것이었다. 휴가지에서 돌아오면서 이순신 장군을 서양의 장군과 비교해보기로 했다. 여러 영웅들이 있지만 4000~5000년 전 성경 속의 전쟁 지도자인 여호수아를 견주어 볼 만한 인물로 꼽게 됐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부관으로 그의 사후에 사령관으로 임명돼 120여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원주민과 7년간 30여번의 정복전쟁에서 단 한 번을 제외한 모든 싸움에서 승리한 인물이다.

시대와 배경 등이 달라 비교하는 데 다소 무리가 있지만,바다와 육지전쟁 군사지도자였던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다고 본다. 객관적 전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발휘한 초인적 경지의 리더십이 있으며,최대 공통점은 손자병법에서 필승조건의 하나로 말한 상하동욕(上下同欲)을 갖추었다고 본다. 그리고 철두철미한 준비와 전쟁터에서 구사한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전술전략,제승 개념에 의한 정보전과 보급병참전에서 승리한 것도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특히 진인사후대천명(盡人事後待天命)한 영적 측면을 강조하고 싶다.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천명을 강조하고 심지어 꿈에 신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하면 이긴다고 가르쳐 주었다는 내용이 나오며,여호수아 장군은 하느님과 직접 기도로 통한 사람이다. 지휘관으로서 솔선수범의 행실과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외에 가슴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도 공통점이다.

싸울 때마다 이기는 리더십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터에서 군대를 이끄는 장군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공동체의 목표 달성을 위해 글로벌 무한경쟁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유 · 무형의 전쟁에서 매번 이겨야만 하는 모든 이에게 뜻 깊다. 500여명의 산 · 학 · 연 전문가로 구성된 한시적 연구개발 조직을 이끌고 있는 필자는 최근 들어 중요한 고비마다 이순신과 여호수아 장군을 떠올려보고 《난중일기》와 《여호수아서》를 읽는다. 매번 승리로 이끄는 리더십은 특히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의 리더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이필원 < 초고층복합빌딩사업단장 pwlee@rist.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