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서울광장 논란' 公益으로 풀어라

신고제 운영시 부작용 고려해야
시장·의장 '시민委' 동수 추천을
올해 치러진 지구촌 선거에서는 각종 이변이 연출됐다. 5월에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는 전통적인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이 모두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결국 제3당인 자민당이 보수당을 연정 파트너로 선택함으로써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가 구성됐다. 300년이 넘는 영국 정당사에서 연립정부는 매우 드문 현상인 데다 두 당 사이에 존재하는 이념과 정책의 차이를 고려할 때 연립정부는 자민당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여 있다.

8월에 실시된 호주 총선에서도 승자는 가려지지 않았다. 총의석 150석 중에서 집권당인 노동당이 72석을 차지했고 야당인 자유 · 국민 연합이 73석을 차지해 모두 과반수에 미달했다. 결국 녹색당 1명과 무소속 의원 3명이 장고(長考)를 거쳐 노동당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줄리아 길러드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수립됐다. 호주에서 어느 당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이른바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출현한 것은 70년 만의 일이었으며 선거가 끝났는데도 집권당이 가려지지 않아 17일간이나 국정공백이 지속된 것은 호주 정치사 초유의 사태였다. 녹색당과 무소속이 언제라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길러드 총리의 리더십은 여전히 시험대 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6월 지방 선거에서 가까스로 승리해 집권 2기를 맞은 오세훈 서울 시장은 영국과 호주의 총리들보다 더 딱한 형편에 처해 있다. 시의회를 야당인 민주당이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석은 교육의원을 제외한 106석 중 79석이다. 시의회는 8월 오 시장이 제출한 조직 개편안을 부결시킨 데 이어 서울광장 집회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조례 개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시의회는 또 광장운영시민위원회 설치에 관한 조례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에 따르면 15명의 위원 중 시 공무원 3명을 제외한 외부인사 12명 전원을 시의회 의장이 추천하도록 돼 있다. 오 시장은 이 두 조례에 대해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재의를 요구했지만 의회는 지난 10일 서울광장 조례안을 재의결하고 27일에 공포했다. 시의회는 여세를 몰아 디자인서울 등 오 시장의 핵심정책들도 손 볼 태세다.

시의회의 행동을 탓할 생각은 없다.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시장의 독선적 행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시의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서울광장 조례 개정안도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자는 좋은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싶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좋은 의도가 좋은 정책을 낳지 않는다는 정치적 금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조례 개정안 내용대로 문화행사에 국한했던 광장 사용이 정치행사와 종교행사에도 개방되면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시민위원회의 의견을 통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시의회 의장이 독점적으로 추천한 인사들이 과연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의도가 좋은 정책으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정파 간 합의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특정 집단,특정 계층이 아닌 시민 전체의 공익에 부합하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 낯선 정치 환경을 맞아 불안하기만 했던 영국과 호주의 정치가 점차 '정상화'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기본에 충실하려는 전통 때문이다. 다행히 오 시장이 재의를 요구한 서울광장 관련 조례 중 시민위원회 설치에 관한 조례 개정안은 아직 재의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차제에 서울광장의 운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시장에게 위원 추천 권한을 일부 돌려주는 것이 맞다. 이를테면 공무원인 위원은 표결권이 없는 것으로 하고 시의장과 시장이 6명씩 추천하는 안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시장과 시의회의 지배정당을 달리 선택한 서울 시민의 표심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허구생 <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