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문화정책' 내실 다져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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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 되레 실태 왜곡 우려이민 후발국 한국은 최근 두 정권의 의욕적인 태도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 영역에서 압축적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배려와 한국인의 인종적 편견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으며 최근에는 이주노동자의 건강의료,다문화가정 자녀의 교육,난민 문제 등으로 관심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외국인 증가 전망치도 과장돼
이런 경향은 정부 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여성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대책'이라는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지원 정책이 2008년에는 다문화가족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다 정교한 '다문화가족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강화대책'으로 진화했다. '우리는 이제 모두 다문화인'이라는 혹자의 말처럼 이제 한국에서도 '다문화'는 주류 담론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압축적으로 형성된 다문화 인식은 한계를 안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무비판적인 태도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다문화 담론과 정책에 대해 우리는 별다른 의견이 없다. 다문화는 당위이며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매우 성숙한 우리 국민이 유독 다문화에 대해선 초등학생처럼 순진하고 수동적이다. 종교에서 도그마가 단순화된 교리의 반복적인 주입을 통해 유지되듯,다문화를 다루는 공익광고,다큐,뉴스,드라마,교과서 등의 담론은 다문화에 대한 자유롭고 다양한 사고를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
다문화도 최근 급속히 늘어난 공익광고의 핵심주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광고들에서 정부와 기업은 가르치고 국민은 계몽의 대상이며 외국인들은 우리의 관용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공익광고의 부정적 효과 중 하나는 종족간 불평등 문제가 한국인들의 무지와 편견 때문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인종차별 캠페인이 인종문제를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로 돌리는 부작용을 낳았듯이 한국의 이민문제를 출입국정책,이주과정,근로조건,복지,인권 등 객관적인 차원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다. 아무리 공부해도 부족한 영어와 마찬가지로 외국인에 대해 모른다는 자책감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다문화에 대한 환호와 과잉의 이면에는 의아할 정도로 얘기되지 않거나,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한국 체류 외국인의 수에 관한 것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재외동포,유학생,전문인력의 입국은 각각 56%,23%,11.7% 증가했지만 단순 취업자의 입국은 6.9% 감소했다.
체류기간별로 보더라도 총 체류외국인은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지만 등록외국인(91일 이상 장기체류)은 0.4% 증가에 그쳤다. 장기체류 외국인의 증가세 정체 내지 감소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 국민의 국제결혼 건수 및 전체 혼인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5년을 정점으로 해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지난 7월에 발생한 베트남 출신 여성 결혼이민자 살해사건에 뒤이은 국제결혼 규제조치는 국제결혼 감소 경향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물론 질적인 측면에서는 이주노동자의 복지문제,결혼이주여성의 사회진출 문제,다문화가정 자녀의 교육과 취업문제 등 본격적인 이주민들의 통합문제가 다뤄질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일본,미국에서의 반이민정서와 인종 갈등이 많은 부분 외국인들이 지나치게 많고 출산율이 높다는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외국인 비율이 무한정 늘어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통계와 담론은 신중해야 한다. 항상 '더 많이'를 외쳤던 발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과 성찰성이 강조됐듯이 다문화의 양적 발전에 대해서도 동일한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엄한진 < 한림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