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곁에 두고 싶은 책] "죄인의 자식이라고 기죽지 말고…" 茶山 정약용…그는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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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지음 | 창비TV드라마 '이산' 속 다산 정약용(송창의 분 · 1762~1836)은 '체하는' 모든 것을 비트는 유쾌한 천재다. 실제 성정은 알 길 없다. 분명한 건 명민하고 다감하며 꼼꼼한 데다 성실했다는 사실이다.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정인보)'라는 평은 그가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보여주고도 남는다.
세상 모든 명저(名著)는 실패와 고난의 산물이라고 하거니와 다산의 방대한 저작 역시 오랜 귀양생활(1801~1818)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의 저서에 나타난 그의 학문과 관심의 폭은 인문 · 행정에서 기술 · 경영까지 실로 넓다. 수많은 글 중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편역)를 꼽는 건 다산의 학문적 소양뿐만 아니라 인간적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편지는 신유교옥에 연루돼 유배된 40세 때부터 풀려난 57세 때까지 두 아들 학유와 학연 및 둘째형(정약전)과 제자들에게 보낸 것이다.
하도 시시콜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대목이 많아 뛰어난 아버지를 둔 아들들이 힘들었겠구나 싶지만 자식 걱정하는 간절한 마음은 읽을 때마다 부모 심정이란 다 이런 것인가 싶어 눈물짓게 만든다.
그는 아들들에게 죄인의 자식이라 해서 기죽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누누이 말하듯 폐족이 되어 세련된 교양이 없으면 가증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아무쪼록 분발하여 실낱같이 된 우리 집안의 글하는 전통을 더욱 키우고 번창하게 해보아라." 그는 또 어디서든 과일과 채소,약초를 재배하라고 말한다. "생지황 끼무릇 도라지 천궁 같은 것이나 쪽나무 꼭두서니 등에도 마음을 기울여 잘 가꿔보도록 하여라.남새(야채)밭을 가꾸자면 땅을 반반하게 고르고 이랑을 바르게 하는 일이 중요하며 흙은 가늘게 부수고 깊이 갈아 분가루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씨는 항상 고르게 뿌려야 하고 모종은 아주 성기게 해야 한다. "
난폭하고 거만한 것,어긋난 것을 멀리하라고 강조하는 한편 '양계를 해도 사대부답게'하라고 이른다. "양계에도 품위 있는 것과 비천한 것의 차이가 있다. 농서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보아라.색깔을 나누어 길러보고 앉는 홰도 달리 만들어 다른 집 닭보다 살찌고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봐야 하느니,이야말로 책 읽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양계다. "
둘째형 약전에겐 제발 실질적이 되라고 부탁한다. "짐승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니요. 섬 안에 산개(山犬)가 수두룩할 텐데요. 하늘이 흑산도를 선생의 탕목읍(식읍지)으로 만들어줬는데도 스스로 고달픔을 택하다니 사정에 어두운 게 아니겠습니까. 들깨 한 말을 부치니 볶아 가루를 만드십시오.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영암군수 이종영에 대한 조언은 지금의 관리들도 기억할 만하다. "상관이 엄한 말로 나를 위협하는 것,간리가 조작한 비방으로 나를 겁주는 것,재상의 부탁으로 나를 더럽히는 것 등은 모두 내가 지금의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위는 빼앗길까 두려워할수록 지키기 어렵다. "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