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남의 눈으로 나를 보라

외부잣대 들이대야 잘못 발견돼…관행이라 우기면 순식간에 파멸
'대학에 입학해서 11년 동안 특권층으로 살았다. 돈이 없어 서러운 적은 있어도 성(性) 고향 학벌로 차별받은 적은 없었다. 1991년 캐나다에 발을 딛고서야 나는 내가 특권층이었음을 인식했다. 그곳에서 서울대 졸업장과 학생증(대학원)은 부도난 어음보다도 가치가 없었다. 나는 생각과 감정을 말이나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지진아였고 상대의 얘기를 잘 못 듣는 청각장애자였다. '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사)가 캐나다에서 썼던 '인종차별의 경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일부다. 글은 이렇게 계속된다. '캐나다에서 인종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건 범죄다. 그러나 모든 차별이 그렇듯 인종 차별은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미묘하고 감정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차별은 느껴지고 경험되는 것이지 이해되거나 설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길에서 갑자기 부딪치는 백인 청년,분명 알아들은 것 같은데 "뭐라고요" 하는 점원,고압적인 백인 경찰에게서 차별을 경험했다며 그들이 인종적 이유로 무례했다고 증명할 순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 같은 소수민족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사회를 다른 시각에서 보고,추상적인 모순보다 피부로 느끼는 차이에 주목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사람은 이렇다. 어떤 일도 자기가 직접 겪거나 느끼지 않으면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기 어렵다. 막연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이런 거구나' 깨닫는 것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있다.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끼니 걱정하는 사람의 절박함을,남에게 뭔가 부탁해보지 않은 '갑'은 상대의 기분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을'의 쓰라림을 알지 못한다.

유명환 전(前) 장관 딸의 특채 파문으로 실시된 감사 결과 외교통상부가 전직 외교관과 고위직 자녀 등 10명에게 채용 시엔 물론 채용 후에도 공관 배치와 연수 등에서 특혜를 준 게 드러난 가운데 해외 근무 중인 외교부 직원 자녀의 학비가 과다 지불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안 그래도 대못 박힌 외무고시 준비생과 국민 가슴 속 상처가 도지게 생겼다. 그런데도 바깥의 시선과 외교부 내부의 시각은 다소 다른 듯하다. 부모 때문에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하는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동료 자녀에 대한 관대함으로 나타날 수 있다거나 아이들이 한 곳에서 크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부담도 감안해 줘야 한다는 변명이 그것이다.

사건 초 유 전 장관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고,사퇴한 뒤 해외에 나간 채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겠다는 것도 어쩌면 별 것 아닌 일로 사람을 마녀사냥하듯했다는 서운함의 표시인지 모른다.

유 전 장관뿐이랴.이번 일로 문제 된 이들 역시 특혜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누구 탓에 불똥이 튀었다며 억울해 할지 알 수 없다. 그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부정이나 비리로 적발된 사람 대부분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재수 없어 걸렸다고 여긴다. 남이 볼 땐 확실히 법과 도리에 어긋나는데도 본인들은 관행인 만큼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각의 차이는 이렇게 엄청나다. 남의 눈으로 보면 실로 뻔한 잘못도 제 눈으론 못 본다. 고위 관료들이 퇴직 후 산하단체나 공기업 임원으로 가는 걸 당연시하거나 자기 자식을 정부 부처 등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방식으로 채용시킨 것은 나 또는 내 자식은 다르다고 생각하거나 다들 그러는 만큼 특혜라고 여기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특권에 익숙해지면 보통사람의 상처와 눈물을 보지 못한다. 홍 교수가 이 땅에선 특권인 줄 몰랐던 것들을 남의 땅에 가서야 안 것처럼 외부의 잣대를 들이대봐야 내부의 문제가 드러난다. 기득권자와 갑들이 '관행이다''자격지심에 괜히 그런다''빽도 실력이다' 식으로 생각하는 한 힘없는 서민과 을의 눈물은 마르기 어렵다. 이 세상 모든 지혜는 관심과 사랑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