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3차 환율大戰] (5) 日 5조엔 더 풀고…美 추가 양적완화…과감해지는 시장개입

(5) 각국 실력행사 본격화

경기 불안에 "나부터 절하"…환율전쟁은 '보호주의' 한 단면
"새로운 통화질서 만들자"…다자간 회의서 공조 논의 전망
美, 15일까지 '환율 보고서' 작성…'中, 환율 조작국' 지정 관심

환율전쟁의 양상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거세지고 있다. 일본이 5일 제로금리 정책을 4년3개월 만에 재도입하면서 강력한 추가 금융완화책으로 엔고 방어에 나서고,브라질은 국제 핫머니(단기성 투기자금)에 부과하는 금융거래세를 4%로 두 배 인상하며 헤알화 절상 막기에 힘쓰는 등 다양한 수단이 동원된다.

통상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추진해온 외환시장 개입이 이제는 과감하게 드러내놓고 이뤄지는 양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은 통화가치 절상을 막기 위해 이미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국가가 한국 대만 싱가포르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스위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 폴란드 등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불안에 제 갈 길 가는 환율정책

환율전쟁은 글로벌 경기회복 불안으로 커지고 있는 보호주의의 한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에 머물고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하면서 보호주의 압력이 커진다"(가디언)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현행 0.1%인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0)금리인 0~0.1%로 인하하고 국채나 상장지수펀드(ETF) 부동산투자신탁(리츠) 등을 구입할 수 있는 5조엔(약 68조원) 규모의 '자산매입 기금'을 신설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이뤄졌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달 15일 외환시장에 개입해 2조엔을 풀어 달러를 사들였지만 엔고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서 경기불안 요소로 작용하자 이번엔 일본은행이 시중에 엔화 자금을 더 풀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다음 달 2~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 금융완화를 실시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선수를 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추가 금융완화 관측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엔화는 최근 다시 강세를 보였다. 일본은행이 제로금리라는 사실상 마지막 카드까지 던진 것은 어떻게 해서든 엔고를 억제하려는 절박함을 보여준다. 엔고는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다.

신흥국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당장 경기과열을 걱정하는 브라질이 토빈세와 비슷한 금융거래세 인상에 나선 것은 "세계가 벌이는 국제 통화전쟁이 브라질의 경쟁력을 빼앗는다"(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위안화를 미국의 요구대로 20~40% 절상하면 중국 수출기업이 얼마나 파산할지 알 수 없다"(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인식도 독자적인 환율정책 배경에 경기불안이 있음을 보여준다.

◆환율공조 가능할까환율전쟁이 확산되면서 제2의 플라자합의처럼 새로운 통화협정이나 국제통화질서를 만들기 위한 다자 간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전 세계 420여개 은행과 금융기관을 대표하는 국제금융연합회(IIF)는 4일 세계 주요 핵심 국가들이 모여 새로운 국제 환율 협정을 도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1985년 엔화 절상을 이끌어낸 플라자합의와 같은 협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환율전쟁을 피하기 위해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미국은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위안화 절상을 의제로 삼으려 한다. 멕시코가 G20 정상회의가 위안화 절상압력 무대가 돼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다가오는 국제회의에서 환율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모건스탠리는 전망했다.

환율문제가 논의될 수 있는 국제회의로는 △8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IMF · 세계은행 연차총회 △11월6일 일본 도쿄에서는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의 △11월11일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11월13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등이 있다. 다자 간 회의에서는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한다는 지적을 받는 중국뿐 아니라 양적 완화조치로 통화가치 절하를 유도하는 미국과 일본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자 간 논의와 함께 미 · 중 양자 간 신경전도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우선 미 재무부가 15일까지 공개해야 하는 환율 보고서에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지가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11월2일 중간선거 이후로 발표 시점을 연기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내달 개최되는 미국과 중국 간 통상교역 공동위원회에서도 위안화 환율 문제가 거론될 전망이다.

하지만 환율전쟁이 거친 수사로 끝나고 국제사회가 자유무역을 강화하는 쪽으로 해법을 찾아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오광진 기자/뉴욕=이익원/도쿄=차병석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