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의 길이 세계로

최근 스위스 정부의 제안으로 스위스의 대표적 관광도시 5곳에 제주 올레길을 이름딴 '우정의 길'이 만들어지고,이 길 어귀에 간세(조랑말 형상의 올레 이정표)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의 길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스위스뿐 아니라 이미 일본도 제주 올레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제주에서 낳은 길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셈이다.

평소 등산과 걷기를 좋아하는 필자에게도 작년 이맘때 임직원들과 함께 걸었던 제주 올레는 감동을 주었다. 올레길의 흙을 직접 밟으면서 물과 바람을 느꼈고 마을 구석구석 숨겨진 토속적인 정겨움도 눈여겨 보았다. '진짜 제주'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길을 걸으며 나누었던 동료들과의 진솔한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제주 올레의 등장은 우리나라 걷기여행의 붐을 이끌어가고 있다. 섬에서 시작된 올레는 유명 산악지의 둘레길과 서울 성곽길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스페인 산티아고 800㎞ 길을 걷고 난 후 제주에 올레길을 내면서 "길은 길을 낳는다"고 했다.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아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만든 제주 올레길.길이 길을 낳는다는 의미는 비단 올레에만 적용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제약업계에도 꼭 필요한 말이다.

지난 몇 년간 세계 제약업계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만 국내 제약산업은 정체되어 있다. 생존을 걱정하는 제약사들의 목소리도 자주 들린다. 냉정히 말하면 그동안 국내 제약산업은 새로운 시장 개척에 적극적이지 않았고,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길,즉 한국이라는 좁은 시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순탄한 길만을 선택해 왔다.

지인들로부터 한국 제약산업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이제 시야를 해외로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 시장,특히 제약 시장의 50%에 가까운 미국 시장을 비롯해 선진국을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까운 일본의 예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제약시장의 10배가 넘는 일본은 세계 시장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1960~1970년대 영세했던 자국 기업 보호정책을 통해 신약개발기업을 양산했다. 경쟁력을 잃어가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국가가 나서 인수 · 합병 및 특성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이후 일본 기업 간 인수 · 합병이 자연스레 일어나면서 현재 일본 제약사들은 세계적 제약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레길이 제주 고유의 문화를 보여주며 제주를 세계와 이어주듯이,국내 제약산업도 우리가 가진 강점을 잘 활용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세계의 관심을 우리에게 기울이게 하고,더 나아가 세계로 진출해 세계적인 제약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일을 빠른 미래에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진호 < GSK한국법인 대표 Jin-ho.kim@gs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