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배추 배급시대'의 풍경

"힘들어도 어떻게 해? 이렇게 해서라도 먹어야지.그나저나 좀 많이 갖고 오지…."

서울시농수산물공사가 시중가격의 70% 이하로 재래시장에 배추를 공급한 지 이틀째인 6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용답시장.시장상인회로부터 배추 2망(6포기)을 구입한 김옥순씨(75 · 용답동)는 손수레에 배추를 묶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추석 직전에 배추 1망을 1만2000원에 샀는데 한 달도 안 돼 거의 3배로 올랐다"며 혀를 찼다. 시장상인회가 이날 오전 10시부터 판매한 배추 940망은 1시간40여분 만에 동이 났다. 일반 상가에서는 1망을 3만3000~3만5000원에 판매했지만,시장상인회의 가격은 1만5000원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현장에서 배추를 판매한 시장상인회의 지흥열씨(48)는 "판매 서너 시간 전부터 줄이 늘어서 한때는 400여명이 서 있었다"며 "5일에 비해 홍보가 덜 됐다는데도 이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배추 할인 판매는 용답시장을 비롯해 종로구 통인시장,양천구 신영시장 등 3개 재래시장에서 이뤄졌다. 통인시장의 한 상가 주인은 "먹을 것을 사겠다고 새벽부터 줄서서 '새치기하지 마라'고 싸우는 모습이 배급사회를 떠올리게 했다"며 고개를 내둘렀다.

지난 5일 관악구 신원시장에서는 오전 11시에 파는 배추를 사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윤덕인 서울시농수산물공사 농산관리팀장은 "지금까지 시에서 긴급대책을 세워 식량을 염가에 공급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100년에 한 번 빚어질까 말까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는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배추 1망을 1만8500원에 경매받아 30%가량 낮은 가격으로 재래시장에 공급한다. 공사가 사실상 '중간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시 예산이 4억원가량 투입된다. 재래시장이 없거나 배추 판매를 구청에 신청하지 않은 지역 주민들은 그나마 몇 시간씩 기다려 배추를 싸게 살 기회조차 못 갖는다. 서울시는 시장가격을 왜곡시킬 우려 때문에 가락동 도매시장 경매 물량의 10% 미만으로 한정해 물량을 사고 있다. 그래도 남는 궁금증 한 가지.가락동에서 1만8500원에 경락된 배추가 어떻게 일반 시장에서는 3만원 넘는 값에 팔리는 걸까.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