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tory] 행남자기‥국내 첫 본차이나 개발…생활자기에 디자인 입혀 매출 '날개'

hurrah! 히든 챔피언
경영포인트
① 68년 한우물 경영ㆍ무분규 노사문화
② 세계 최고 수준의 도자기 제조 기술
③ 디자인 경영 통한 글로벌 명품 비전

도자기는 한 나라의 문화를 보여준다. 페르시아 도자기는 당시의 화려한 문화를 한눈에 나타낸다. 중국은 아예 도자기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도자기라는 영어 단어가 똑같을 정도다. 한국 역시 고려청자 이조백자로 대표되는 자랑스러운 도자기 문화가 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한국 도공을 데려다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고 쇼군(막부정권의 수장)은 부하의 급료를 도자기로 주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해상권을 활용해 동아시아에서 도자기를 들여다 유럽에 팔았고 이들 도자기가 유럽 왕실의 도자기 문화를 꽃피우는 데 일조했다. 장식용 도자기를 대중화한 게 도자식기(생활자기)다. 이 분야에선 유럽과 한국 일본이 명품의 자리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생활자기는 단순한 밥그릇이 아니다. 그 안에 기술과 예술이 녹아 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행남자기 서울사무소 겸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 말이 실감난다. 금박 입힌 도자기를 비롯해 세계적인 리빙디자이너로 꼽히는 아릭 레비가 디자인한 제품,국내 굴지의 디자이너 및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린 디자이너 컬렉션 등 다양한 도자기가 전시돼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도자기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하며 감탄한다. 이 회사는 국내외 4개 공장을 두고 연간 약 4000만달러어치를 5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공장은 본사인 목포와 함평 · 여주 및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부근에 있다. 대부분 자가브랜드로 수출되지만 일부는 세계적인 명품업체의 브랜드를 달고 전 세계로 수출된다. 유럽 왕실에 공급되기도 한다. 이 회사의 기술력과 품질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다.

목포에 본사를 둔 행남자기가 어떻게 세계적인 기술력을 지닌 생활자기 업체로 자리잡았을까.

첫째,68년 동안 이어온 한우물 경영이다. 노희웅 대표이사 사장(66)은 "1942년 민족자본에 의해 설립된 행남자기는 68년 동안 4대째 도자기 외길을 파온 기업이다. 국내 최초로 본차이나를 개발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본차이나 전문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회사의 경영자는 창업자인 고 김창훈 회장,2대인 고 김준형 명예회장,3대인 김용주 회장(69)으로 이어지고 있다. 4대인 김유석 마케팅 본부장(전무 · 39)은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업체이다 보니 3대째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둘째,노사화합 문화다. 이 회사는 창업 후 한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다. 특이한 것은 노동조합이 경영자의 권유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노조는 그리 환영받는 조직이 아니었다. 1963년 당시 경영자인 김준형 명예회장이 노조 설립을 제안해 이를 계기로 노조가 결성됐다. 하지만 한 번도 노사분규나 노노갈등이 없었다. 모범적 노사화합 관행은 올해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셋째,품질 우선주의다. 좋은 도자기란 무엇일까. 노 대표는 "가볍고 얇으면서도 강한 제품"이라고 답한다. 아울러 "보온성이 뛰어나고 가급적 하얀 빛깔을 띠어야 하며 디자인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여섯 가지 특성을 지녀야 고급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요즘 각광받는 본차이나를 1957년에 개발했다. 본차이나는 도석 장석 고령토 등 기본 소재에 소의 뼈를 태워 만든 재인 본애시(bone ash)를 섞어 만든다. 그러면 하얀색을 낼 수 있는 데다 가볍고 강한 도자기로 탄생하게 된다.

당시 이 회사 관계자들은 본차이나의 핵심 재료인 본애시를 만들기 위해 도살장과 식당을 수없이 오갔고 이렇게 구입한 소뼈를 태울 때 나는 역한 냄새 때문에 주민들의 원성을 사 설득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또 본애시의 배합비를 맞추기 위해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수많은 도자기를 깨뜨려야 했다. 이러한 산고 끝에 최고급 도자기인 본차이나가 개발됐다. 넷째,글로벌 경영이다. 행남자기는 3대 김용주 회장이 1974년 국내 최초로 미주지역 수출의 토대를 닦은 이래 지속적인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펼치고 있다.

1985년에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베네수엘라에 플랜트와 기술을 수출했으며 1989년 인도네시아에 합작공장인 행남세자트라 인도네시아를 설립했다. 이 공장은 1650명의 종업원을 두고 유럽 및 미주지역 수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류 열풍을 계기로 중국시장 수출을 늘리기 위해 현재 15개소인 중국 내 대형 백화점의 행남자기 독립매장을 2010년 말까지 30곳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베이징과 상하이 지역에 1개씩 직영점도 열 계획이다.

수출지역도 다변화하고 있다. 노 대표는 "유럽과 북미 중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프리카 중동 인도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으로 수출지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현재 32개국인 수출국을 53개국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섯째,디자인 경영이다. 이 회사는 2002년 진태옥씨 등 국내 간판급 패션 디자이너 6명에게 의뢰해 이들의 디자인을 그릇에 옮겼다. 2006년에는 세계 3대 리빙디자이너로 꼽히는 아릭 레비와 사진작가 김중만씨,2010년엔 디자이너 이상봉씨의 작품이 행남자기에 담기게 된다. 또 전통자기의 맥을 잇기 위해 '고요(高窯)'를 출시했다.

이 회사는 최고급 본차이나 욕실용품 본(Vohn)을 출시해 대형 아파트와 고급 주택을 겨냥하고 있다. 매출 확대를 위해 본차이나 최고급 욕실자기용품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노 대표는 "지난해 행남자기의 매출은 국내법인이 445억원,해외법인인 인도네시아 공장을 포함하면 900억원 규모인데 이 같은 신사업과 글로벌경영 확대로 앞으로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