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표준의 날] "소비자ㆍ기업 중심의 열린 표준화 필요…정부가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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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세상을 만드는 표준' 좌담표준을 선점하려는 글로벌 '표준경쟁'이 치열하다. 특정기술이 시장에 나오기 전 표준을 완성시킴으로써 핵심원천기술을 보호하고 시장을 확보하자는 차원이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 산업 금융 문화 사회 스포츠 등 모든 영역에서 표준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환율 급등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에는 무역의존도가 82%에 달했다. 최근의 기술규제 증가추세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사는 '모두에게 열린 세상을 만드는 표준'이란 주제로 최근 서울 여의도 르네상스호텔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우리나라 표준 현황과 기술규제 애로사항을 짚어보고,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허경 기술표준원장,최갑홍 한국표준협회장,이규연 한국고령친화용품산업협회장,홍기봉 S&T중공업 전무,박상희 연세대 명예교수가 참석했으며 강병구 고려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사회=세계 3대 표준화기구인 ISO(국제표준화기구),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ITU(국제전기통신연맹)는 매년 10월14일을 '세계 표준의 날'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국가 표준화 전략을 중소기업 전략으로 수립했다. 올해 주제인 '모두에게 열린 세상을 만드는 표준'이란 어떤 의미인가.
◆허경 기술표준원장=산업화 시대에는 짧은 시간에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정부가 이끌어가는 공급자 중심의 표준개발 방식이 중요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수요자 관점의 표준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표준을 실제 사용하고 소비자가 표준의 개발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표준개발체계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술표준원도 미국의 민간 전문표준기관을 통한 표준관리제를 벤치마킹했다. 2008년 14개의 민간 전문표준기관을 표준개발협력기구(COSD)로 지정했다. 현재 기구는 44개까지 확대됐다. 2012년까지 이 기구에 전반적인 한국산업규격(KS)관리 기능을 단계적으로 이양할 계획이다.
◆사회=수요자 중심의 표준개발체계는 국제무역을 빈번히 하는 우리 기업의 입장에서는 불리한 부분도 있다. 표준이 무역을 할 때 기술장벽(TBT)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S&T중공업은 어떻게 대응하나.
◆홍기봉 S&T중공업 전무=실제로 수출대상국이 독자적인 기술규제를 도입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어 어려움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예로 지난해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든 수입제품에 적합성 인증서를 요구하고 있다. 에콰도르도 대부분의 공산품에 대해 시험성적서와 적합성 인증서를 필수로 요구하고 있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S&T중공업은 일찍이 사내표준화위원회를 두고 품질경영시스템을 비롯한 한국인정기구(KOLAS)교정 · 시험 시스템,항공우주표준인 AS/EN 9100 등을 조기에 구축했다. 기술장벽 문제는 글로벌시장으로의 진입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관문이다. 지속적인 표준체계의 구축 및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품질 우위가 확보된다면 고객만족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시장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사회='모두에게 열린 세상을 만드는 표준'을 추구할 때는 연구 · 개발(R&D)단계부터 표준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 산 · 학 · 연 · 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박상희 연세대 명예교수=최근 국제표준화의 특징은 특정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 산업체들이 중심에 선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식재산권이 포함된 표준을 제정하고 시장에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표준과 시장을 주도한다. 이런 경우가 점차 확대되고 있어 표준과 연계시키는 표준특허 활동은 자국 산업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표준 관련 학술단체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이를 구심점으로 산 · 학 · 연 · 관이 한 자리에서 표준화에 관련한 모든 사항들을 논의해야 한다. 정책적인 대안과 학술적인 연구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표준화 협력체계를 주도적으로 이끌 주체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돼야 한다. 현재 민간 전문표준기관을 표준개발협력기구(COSD)로 지정해 민간 중심의 표준개발체계를 갖춰 나가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사회=소비자가 표준화에 참여하고 이를 이행하고 확산시키도록 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최갑홍 한국표준협회장=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은 소비자정책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표준 초안을 만드는 초기단계부터 소비자 대표가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소비자정책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고령자와 장애인 배려에 대한 표준화 진행사항을 고찰해 해당 표준의 이행,확산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기술 분야 표준개발에 소비자의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있는 '표준화에 관한 유럽의 소비자 목소리(ANEC)'가 지속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 소비자의 의견을 도출하고 이 결과를 기초로 유럽표준화기구(CEN/CENELEC)에 건의해 표준을 제 · 개정해 나간다. 현재 우리나라는 생활표준협의회를 만들어 소비자 참여의 길을 열어 두고는 있으나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하지는 않고 있다.
◆사회=장애인 및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표준화 과제는 무엇인가.
◆이규연 한국고령친화용품산업협회장=우리나라도 조만간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만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표준화 정책을 전 산업분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고령자나 장애인만을 위해서 개발해 왔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표준을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표준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고령자와 장애인의 표준에 대한 요구사항을 세분화해 분석함으로써 모두가 이용하기 편리한 표준을 개발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복지용구 사업으로 급여되는 품목에 대한 표준을 제정하는 일과 장애인 및 고령자 보조기구에 대한 시험과 인증제도를 도입해 품질관리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21세기에는 모든 사람이 지식과 정보에 접근이 용이하다. 이를 반영한 기능과 성능을 갖춘 신제품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이 중심이 되고,정부와 유관기관이 지원하는 표준화체계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 표준을 대표하는 산 · 학 · 연 · 관 전문가들이 공감대를 갖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