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어겼다가 망신당한 공정위

"담합신고 땐 과징금 전액 면제"…실제론 60% 감면 그쳐
볼보코리아가 낸 소송서 패소
2004년 10월 볼보그룹코리아 대표이사였던 에릭 닐슨은 공정거래위원회 심사관을 만나 자사의 불공정거래 혐의 조사에 대해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볼보는 2001년부터 현대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와 굴착기 등 건설기계장비 판매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었다.

공정위는 앞서 2002년 보도자료를 통해 1순위 담합 조사협조자(담합 행위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최초 증거를 제출한 피조사자)에 대해선 과징금을 면제해주겠다고 발표했고,닐슨 대표를 만났던 심사관도 "최대한 과징금을 감면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볼보는 공정위에 담합 사실을 구체적으로 털어놓고 관련 자료도 제출했다. 공정위는 그러나 2005년 볼보에 과징금 184억원 중 45%만 감면해 101억여원을 부과했다. 볼보가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공정위는 과징금을 면제하는 대신 70억여원을 부과,처음 액수에서 60%를 감면하는 데 그쳤다.

볼보는 "과징금이 면제될 것으로 믿고 1순위로 조사에 협조했는데 공정위가 신뢰보호의 원칙을 어겼다"며 법원에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법원은 볼보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제7행정부(부장판사 곽종훈)는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위법"이라며 최근 볼보에 대한 과징금 납부명령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공정위가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과징금 면제에 대해 공적인 견해를 표명했다"며 "볼보는 1순위 조사협조자가 되면 과징금을 100% 면제받을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런 신뢰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볼보의 조사협조로 담합행위가 구체적으로 입증됐고,이로 인해 볼보와 타사 간 신뢰관계가 깨져 향후 새로 담합할 소지가 크게 감소했다는 점도 취소 사유로 들었다.

볼보 관계자는 "이 사건과 유사한 2008년 황동봉 가격 담합 사건에서 D사가 시정조치를 받고도 담합행위를 반복했고 담합에 적극적이었는데도 과징금을 95% 감경받았다"며 "과거 시정조치를 받은 적도 없고 담합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볼보에 과징금을 60%만 감경한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 조치였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