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회장 “최소한 내년 3월까지 자리 유지 희망"

[한경속보]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은 11일 최소한 내년 3월까지는 자진 사퇴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해 내년 3월 주총에서 후계구도를 확정지은 후 물러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라 회장은 이희건 명예회장 자문료 사용과 비자금 조성 의혹,그리고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아 위법사실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라 회장,후계구도 구축의지

라 회장은 이날 자진 사퇴할 뜻이 없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이백순 신한은행장과의 3인 동반퇴진에 대해 “조직 안정과 발전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내년 3월 주총 때까지 자리를 유지하느냐는 질문에도 “금융감독당국이 가능한 공백 없이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희망”이라고 말했다.라 회장은 내년 3월까지 신한금융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후계구도를 본인의 의도대로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금융권은 분석했다.

내년 3월까지는 5개월 남짓 남았다.금융감독당국이 금융실명제법 위반과 관련 중징계 중에서도 강도가 약한 ‘문책’을 내리면 라 회장의 뜻대로 내년 3월까지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다.금감원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내리면 그만둬야 한다.그러나 제재심의위원회 결정 후 금융위원회의 징계 확정까지 최소한 한달이 걸린다.고작 3~4개월 남은 상황에서 신한금융이 ‘경영 공백’ 우려를 내세우며 금융감독당국을 설득할 수 있다면 라 회장의 뜻대로 된다.하지만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변수다.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5일 “신한 사태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다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당시 정부와 청와대의 의지를 반영한 발언이라는 게 정설이다.더군다나 정부가 라 회장이 구축하는 후계구도를 받아들일지도 명확치 않다.라 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이사회에서 선임된 후계자라면 앞으로 라 회장이 수렴청정할 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문료,비자금? “나와 관계 없는 일”

라 회장은 현재 두 가지 의혹 또는 혐의를 받고 있다.첫째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건넨 50억원에 대한 차명계좌 사용,비자금 조성,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이며 둘째는 신한은행이 신 사장을 횡령 혐의로 고소한 이희건 명예회장 자문료 15억여원 중 5억원이 라 회장 용도로 사용됐다는 의혹이다.검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라 회장은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50억원에 대해서는 이미 개인 자금으로 검찰의 내사종결 처분을 받았다.또 차명계좌를 사용했다는 점은 이미 밝혀졌지만 금융실명제법은 차명계좌 보유에 대해 처벌 규정이 없다.자문료 중 5억원이 라 회장 용도로 사용됐다는 것도 자문료와 비자금에 대해 “신 사장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나와 관계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이 명예회장 자문료를 관리한 것도,사용한 것도 은행 비서실이나 신 사장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라 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마지막에 “50년 동안 나름대로 올곧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일이 생기게 돼 죄송하기 짝이 없다”고 밝혔다.

◆“조직안정과 발전을 위해”라 회장은 5분여 동안 진행된 질문시간에 ‘조직안정과 발전을 위해’라는 말을 3번이나 사용할 정도로 ‘개인 자신보다는 신한 조직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신 사장을 검찰에 배임·횡령 혐의로 고소한 것도,지금 자진 사퇴를 하지 않고 현직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 신한이라는 조직을 위한 행동이라는 뜻으로 읽혀진다.3인 동반퇴진을 묻는 질문에 “누군가 수습해야 하지 않냐”는 말에 나온 ‘누군가’는 이 행장보다는 본인에 더 중심을 둔 것으로 보인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