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률 2% 포인트 UP] (1) "인구의 2%만 이민 유치해도 GDP 2조원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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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민 100만명 받아들이자홍콩 란타우섬 동쪽 연안에 자리잡은 디스커버리베이에서는 피부색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주민 2만500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30개국에서 온 외국인이다. 마치 유럽의 작은 도시를 연상케 한다.
저출산ㆍ고령화 눈앞의 위기…젊은 해외인력 유치 불가피
이민법ㆍ이민청 만들어…영주권 발급대상 확대해야
이들 중 상당수는 홍콩 영주권을 취득한 엘리트다. 그들은 금융회사가 밀집한 센트럴 지역으로 출근한다. 최광해 주홍콩대사관 재경관은 "디스커버리베이는 인종 차별도 없고 훌륭한 국제학교 등이 갖춰져 있어 인재들의 용광로로 불린다"며 "홍콩이 오늘날 아시아 금융허브로 발돋움한 것은 오래 전부터 개방된 이민정책으로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열린 이민정책이 국가경쟁력 좌우
싱가포르도 많은 외국인을 받아들이고 있다. 인구 500만명 중 100만여명이 해외에서 이민온 젊은 근로자들이다.
킴응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아 · 태지역 신용평가담당 이사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데는 개방된 이민정책으로 젊은 국가를 유지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고 말했다. 홍콩 싱가포르와 달리 이웃 일본은 빠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니혼진론(日本人論)'(일본 국민의 우월성을 강조한 이론)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이민의 문호를 굳게 닫았다. 최홍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일본이 이민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부담하고 있는 기회비용은 3조8000억엔으로 추산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배타적 민족주의로 자기쇄신에 실패해 역동성을 상실한 것이 경쟁력을 잃고 장기 침체에 빠진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이를 인식해 앞으로 50년 안에 일본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1000만명의 해외 이민을 받아들이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민법조차 없는 한국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1.15명)이 가장 낮고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르다. 핵심 취업연령인 25~54세 인구는 올해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2050년께에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게 통계청의 추산이다. 인구 고령화는 생산성 감퇴로 이어진다. OECD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 높아질 때마다 경제성장률은 연간 0.32% 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외국인의 국내 이민에 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있다. 변변한 이민법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2002년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외국인의 국내 영주권 취득 요건을 명시한 것이 전부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저출산 ·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저성장을 막기 위해선 이민정책을 활용해 젊고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며 "이민법 체계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형 KAIST 미래산업 석좌교수도 "이민의 문을 열면 노령화 문제도 해결하고 국가도 활력있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문화와 피가 섞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 우수한 집단을 형성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라며 "우리도 더이상 단일 민족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민 100만명 받아들이면?
이민의 문호를 활짝 연다면 경제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까. 이동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민으로 노동 공급이 증가하면 국내 산업의 인력난 해소는 물론 자본 수익률을 높여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적인 생산 증가 외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돼 기업의 투자 여력이 증가하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영국은 1997년 이후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10년간 15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는 통계도 있다"고 말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2%인 100만명만 이민으로 받아들여도 성장률에 미치는 플러스 효과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순이민율이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GDP가 0.1%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한 저명 인구학자 로버트 배로 미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 결과를 적용하면 이민자를 100만명으로 늘릴 경우 GDP는 2조원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부수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데이비드 어드레치 미 인디애나대 교수는 지난 8월30일 한국경제60년사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이민정책은 노동 공급 감소에 대처하는 좋은 대안"이라며 "다양한 민족이 유입되는 것이 혁신에 더 좋고 기업가정신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민 유입이 증가할수록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 창의성이 높아져 첨단 하이테크 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청' 설치해야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18만명(2009년 말 기준)으로 추정된다. 이 중 영주권 취득자는 1만6567명으로 1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단기 방문 취업자와 불법 체류자가 대부분이다.
최 연구원은 "단기 외국인 노동력을 들여오는 소극적인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이민법을 만들어 영주권 발급 대상을 확대하고 외국인 정책을 전담할 이민청 설립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 온 이공계 유학생 중에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에게 영주권을 줘 경제 발전에 기여할 우수 인재로 붙잡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 논의 단계인 복수국적 허용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내 인재를 붙잡고 해외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선 복수국적도 전면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